“딸과 외손주를 장례식장 냉동고에 보관한지 158일 됐습니다. 어서 진실을 밝히고 장례를 치러주고 싶습니다.”
지난 1월,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만삭 의사부인 사망 사건’의 사망자 박모씨(29ㆍ여)씨의 시신은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박씨의 아버지 창옥씨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사위 측에서 해외서 법의학자를 불러 온다는데 증거품 중 하나인 딸의 시신이 있다면 진실을 가리기 더 좋지 않을까 싶어 보관하고 있다”며 “하루 빨리 진실이 밝혀져 딸과 외손주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딸의 시신 하루 10여만원 들여 냉동보관 중”=경기도 안양시 평촌의 자택에서 만난 박씨와 부인 이씨는 내내 어두운 표정이었다. “빨리 이 사건을 잊기 위해 딸의 결혼사진, 가족사진까지 49재때 다 내다버렸다”는 이들은 정작 딸의 시신은 장례도 못 치룬채 하루 10여만원의 높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냉동보관하고 있다.
검찰은 이미 지난 3월께 제반 증거들을 통해 남편 백씨가 만삭의 아내를 목졸라 살해했다는 혐의를 잡고 그를 구속기소 한 바 있다. 그러나 백씨측은 공판을 앞두고 오스트리아에서 법의학자를 불러오기로 했다. 검찰 측은 백씨 측이 해외 법학자를 부르기로 한 데 대해 1995년 치과의사 모녀사건을 벤치마킹하려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당시에도 해외 법의학자의 의견이 주요 증거로 채택되 1ㆍ2심을 뒤엎고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끌어낸 바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새로운 증거 잡았다더라, 진실 꼭 밝혀져야…”=박씨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사위가 평소 예의 바르긴 했지만 가정의 사랑을 못받고 자라나 여성을 아끼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씨 역시 “딸이 자주 사위의 게임 중독 현상에 대해 고민하고 상담했지만 ‘남편 기를 살려주는게 아내의 역할’이라며 강조했는데 이런일이 벌어졌다”며 “딸이 ‘남편이 게임할때 집중하고 있을때 뭐라 하면 굉장히 화를 낸다’고 할때도 ‘서로 화나면 참아라. 남자들 화날때 안 무서운 사람 어딨냐’고 했는데…”라며 울먹였다.
자영업을 하며 몇몇 기업체를 운영하는 박씨 부부에게 이번 재판은 돈 문제와 관련 없는 진실찾기 공방이다. 이들은 “아직까진 진실찾기에만 몰입할 뿐, 민사소송 등 돈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며 “돈 문제가 아니라 딸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재판”이라 잘라 말했다.
박씨는 “최근 검찰에서 백씨 몸의 상처 등 새로운 증거를 찾았다고 하더라”며 “사건이 난지 160일째 되는 오는 23일이 공판기일이다. 어서 진실이 밝혀져 딸과 외손주를 분리 수술해 각각 장례를 치르고 천도제를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김재현 기자 @madpen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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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딸의 사진까지 다 버려버린 아버지 박씨가 딸의 생전 모습을 추억하며 아파트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사진=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