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 경영스타일
신세계백화점·이마트 분리성장률 둔화시점서 정면돌파
출시 앞둔 상품 직접 맛보고
포장선택 등 구체적 주문까지
신세계몰 매출활성화 주력
中 이마트 매각 등 숙제로
1라운드는 합격점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2009년 12월 총괄 대표이사 부회장직에 오른 이후 지난해 신세계 매출을 26%, 이마트 매출을 9.6% 끌어올렸다. 이마트 매출 신장률이 2008년 4.8%, 2009년 4.5%였던 것에 비하면 매출 성장의 폭을 배 정도 높인 것이다. 신세계 매출 신장률 역시 2008년 12.9%, 2009년 22.3% 수준보다 큰 폭으로 뛰어오른 것을 감안하면 데뷔 첫해의 성적은 합격점을 줄 만하다.
1라운드의 선방은 이마트 경쟁력 강화와 기업 분할 등 연속으로 날린 회심의 강펀치 덕분이다. 정 부회장은 수년간 대형마트의 성장률이 둔화하는 시점에서 이마트 신규 출점을 확대하고 업태를 다변화하는 정면 승부를 택했다. 지난달에는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를 각각 별도법인으로 독립시키기도 했다.
이 같은 강펀치를 날릴 수 있는 체력은 이병철 선대회장의 장기적인 안목과 어머니 이명희 회장에게서 물려받은 강단 등 삼성가의 태생적 DNA에서 나왔다.
정 부회장은 이병철 선대회장이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흔 가까운 나이에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던 점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는다. 70세가 되어서도 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경영인으로서 갖춰야 할 필수조건이라는 교훈을 그때 배웠다는 것이다.
‘정용진식 현장경영’은 무엇이든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 기본이다. 현장을 찾을 때는 대상의 규모나 국제무대에서의 위상 등에 구애받지 않고 눈에 띄는대로 들어가 꼼꼼히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영업면적이 660~990㎡ 규모인 하드 디스카운트 매장 알디(Aldi)에 들러 점장과 무려 1시간 동안이나 면담을 나누기도 했다.
직접 고객의 선택을 받는 제품에 있어서는 소비자 입장에서 더욱 깐깐한 잣대를 들이댄다. 출시를 앞둔 이마트의 간편가정식은 정 부회장의 입맛을 통과하지 못하면 매대에 오를 수 없다. 정 부회장은 이마트 성수동 사무실에 ‘테이스트 키친’을 마련, 매주 모든 개발상품을 시식하며 마지막 시험을 치르게 했다.
이마트가 스시 코너를 강화할 때도 모든 스시를 시식해보고는 “스시색이 붉은색이면 포장도 이에 걸맞게 해야 한다” “프리미엄 스시는 라벨에 골드를 쓰는 게 좋다”는 등의 구체적인 주문을 할 정도였다.
현장을 중시하는 역동감에 균형을 잡아주는 다른 한 축은 직원에 대한 배려다. 지난해부터 신세계는 성수동 본점 스타벅스 매장 자리에 보육시설을 마련해 기혼 직원의 육아 부담을 덜게 했다. 호텔 수준의 고급 피트니스센터를 마련해 임직원에게 무료로 개방한 것도 직원의 건강관리를 위한 배려의 일환이다.
직원의 행복지수가 올라야 고객에 대한 서비스가 향상되고, 신세계의 궁극적 목표인 ‘고객이 행복한 회사, 직원이 다니고픈 회사’가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1라운드의 합격점으로 안심하기에는 정 부회장에게 남은 숙제가 너무 많다. 그 중 하나는 최근 베이징점 등 중국 내 10개 점포를 매물로 내놓을 정도로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국 사업을 정상궤도에 올려놔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골목상권 영세상인의 곱지 않은 시선을 극복하고 슈퍼사업을 확대하는 것이나 신세계몰 매출 활성화 등도 만만한 숙제는 아니다.
정 부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초일류 글로벌 기업을 향한 야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정 부회장이 최종 라운드를 마치고 챔피언 벨트를 거머쥘 수 있을지, 업계와 재계의 관심사가 집중되는 대목이다.
한편 정 부회장이 본격적인 3세 경영 데뷔전에서 신세계와 이마트를 분할하는 묘안을 내놓으면서 주목받고 있는 또 다른 인물은 동생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이다. 그룹 내부에서는 정 부회장이 신세계와 이마트를 아우르는 ‘원톱 체제’를 유지하면서 정 부사장은 문화 마케팅과 디자인 등 전문 분야를 맡아 서포트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정 부회장이 신설법인인 이마트를 맡고, 정 부사장은 신세계를 맡아 ‘투톱 체제’를 구축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없지 않다. 정 부사장이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서 수학했고, 신세계인터내셔날을 통해 해외 명품 도입에 앞장서는 등 신세계의 패션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왔다는 점 때문으로 해석된다. 도현정 기자/kate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