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평경찰서에서 최근 유명해진 ‘공도(공공도로)의 터미네이터’가 화제다.
여기서 터미네이터란 최근 가정부와의 혼외정사로 유명해진 아놀드 슈워제네거 전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2009년부터 최근까지 일본 도요타의 고급 브랜드 렉서스의 스포츠카 SC430이 주인공이다.
SC430은 아놀드 전 주지사가 영화배우로 출연했던 히트작 터미네이터에서 신형 터미네이터가 타고 나왔던 2인승 스포츠카다.
양평에서 이 렉서스 차량은 2009년부터 지난 5월까지 양수대교 위에서만 47차례 과속으로 적발된 바 있다. 단속범위를 경기도로 넓히면 최근 3년여 동안 74차례나 무인 단속카메라에 찍혔다. 차주에게 부과된 과태료는 400여만원을 넘었다. 하지만 한 푼도 납부하지 않았다.
경찰의 차적조회 시스템에 따르면 이 스포츠카는 ㈜비알에프푸드 명의로 등록된 법인 차량. 이 회사는 인터넷 홈페이지조차 찾기 어려운 소규모 회사지만 여기서 누가 어떤 용무로 이 차를 과속 운전했는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일부 수입 스포츠카들은 시속 200㎞ 이상으로 달려 주변 차량들을 위협하기도 한다. 지난해 6월에는 최고속도가 시속 100㎞인 신공항고속도로에서 포르쉐 카이엔 터보 차량이 시속 203㎞로 달리다 무인 단속카메라에 적발됐다. 같은 해 10월에는 렉서스 SC430이 같은 구간을 198㎞으로 달리다 적발되기도 했다. 두 차량도 각각 인덱스파트너와 남성개발이라는 법인 소유였다.
법인 명의로 등록된 최고급 외제 스포츠카들이 과속 주행을 일삼고 있다. 법인 소유라 운전자 인적 사항을 알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 도로 위의 무법자로 ‘익명의 폭주(暴走)’를 즐기고 있다.
19일 국회 국토해양위 소속 안홍준 한나라당 의원이 공개한 ‘최근 3년간 법인 소유 스포츠카의 교통법규 위반 현황 자료’에서 밝혀졌다. 자료에 따르면 상습 과속 스포츠카들이 전국적으로 294대에 달한다.
이런 차량들의 과속은 무인 카메라로 단속은 되지만, 법인 명의라 운전자 개인에 대해서는 면허 정지나 취소 등의 제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차적 조회를 해 차량 소유주에게 과속 위반을 통지하더라도 실제 운전자를 알기 어려워 운전자에게 부과하는 범칙금과 벌금 대신 차량 소유주에게 과태료(4만~10만원)를 부과하게 된다. 이 마저도 회사 부담으로 비용처리된다.
BMW 차량을 판매하는 코오롱모터스의 한 판매사원은 “소규모 사업체의 경우 오히려 도덕적 해이에 빠져 젊은 오너가 자신의 차량을 법인명의로 구입해가는 일이 다반사”라며 “세금 혜택을 보기위해 심지어 부인차량 자녀들의 차량까지 법인차량을 뽑아서 모든 유류비와 범칙금까지 회사 비용으로 처리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범칙금의 경우 벌점이 함께 부과되지만 과태료로 바뀌면 벌점이 없어져 법인 명의 차량으로 상습 과속을 한 운전자는 면허 정지·취소에서 자유롭게 된다.
경찰 관계자는 “과태료 고액 체납자에 대해서는 압류 등 강제조치를 하고 있지만 인력 부족으로 철저한 조치를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다음달 6일부터는 질서위반행위규제법이 개정돼 과태료 상습 체납 차량의 번호판 영치를 경찰도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과속 위반으로 단속된 스포츠카들의 위반 장소와 시간을 보면 대부분 업무와 무관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개인용도로 쓰면서 과태료까지 회삿돈으로 납부하도록 하는 것은 전형적인 부유층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정식 기자@happysik
yj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