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저 의료기기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A 사는 2009년부터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신제품 개발에 더욱 힘쏟기 위해 해외 고급 연구인력 유치에 나섰다. 하지만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한국의 중소기업에서 일하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결국 이 회사 H 사장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꼭 필요한 인력이 한국행을 꺼린다면 현지서 출ㆍ퇴근할 수 있도록 하자며 아예 실리콘밸리에 연구소를 차려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H 대표는 “한국에서는 설비투자의 10%를 세액공제를 해주는 등 각종 R&D 세제지원 효과가 있어 연구소 차리기엔 좋다. 하지만 좋은 인력은 유치하기 힘들다”면서 “우수 인재들을 끌어 모을 환경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21일 산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중소기업의 연구개발(R&D) 활성화에 나서면서 중소기업 R&D 지원금액, 기업부설연구소 등은 꾸준히 늘고 있으나 단순히 외형성장에만 머물고 있다. 결과 R&D 경쟁력은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낮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따르면 정부의 중소기업 R&D 지원규모는 2008년 1조3800억원에서 2009년 1조7000억원, 2010년 1조8300억원으로 꾸준히 늘었다. 올해 역시 1조9200억원이 중소기업 R&D자금으로 배분될 계획이다.
여기에 공공기관 총 구매액의 50% 이상을 중소기업 제품으로 우선 구매하는 제도를 시행하는 당근까지 얹어줬다. 실제 조달청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중기품 우선구매 실적은 2006년 4100억원에서 2008년 9400억원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이처럼 지원이 계속 늘면서 중소기업 연구소도 점차 늘어 2005년 1만개 수준에서 2009년엔 1만7000여개로 증가했다.
중소기업 R&D의 외형은 꾸준히 성장했지만 인력확보 등 연구소 운영에는 애를 먹고 있다. 인력을 데려오는 것도 어렵지만 이들이 대기업으로 떠나지 않도록 잡아두는 게 더 어렵다는 게 중소기업들의 하소연이다.
실제 중소기업 연구인력은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0년 기준 중소기업 연구원은 4.1명으로 이는 생산직 대비 19.2%, 총인원 대비 11.2%였다. 인력 보유비중을 봐도 석사 16%, 학사 65%에 비해 박사는 3%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10억원당 발표논문 편수는 1.52편, 특허출원 건수는 1.11건으로 연구개발 성과가 떨어져 분발이 요구되고 있다.
잉크테크 정광춘 대표는 “연구 중심 중소기업들이 우수 인력을 키워 놓으면 줄줄이 대기업으로 빨려 들어간다”고 했으며, 케이엠더블유의 김덕용 대표도 “대기업들도 모자라 이젠 외국기업들마저 한국에 연구소를 차려 우리 연구원들 빼가기도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 “우수 인재들이 대학 연구소나 정부출연연구소에 편재되지 않고 중소기업 연구소를 순환 근무하며 성과를 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성과에 따라 지원금을 배분하는 선택ㆍ집중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태일 기자@ndisbegin> killpas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