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이면 찾아오는 전력난. 국민의 전력 과소비, 이상 고온 현상만 탓 할 일은 아니었다. 한국전력과 발전사가 전력 수요 전망치를 지나치게 낮게 책정해 전력 비상 사태가 반복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경영난 때문에 늘어나는 전력수요에 맞춰 발전 설비를 확충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한국전력은 낮은 전기요금으로 인해 2008년 3조65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2009년 5600억원으로 줄었다가 지난해 1조7800억원으로 다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부채는 21조6000억원에서 33조3510억원으로 약 11조7000억원 불어났고, 부채비율도 49.1%에서 81.3%로 높아졌다
21일 본지가 확보한 한전의 2009년 5월 내부 회의 문건인 ‘최근 경영 여건을 고려한 중ㆍ장기 발전설비 건설계획 조정방안 검토’ 보고서에 이런 문제가 잘 드러난다. 당시 한전은 최대 전력수요를 2009년 6535만㎾, 2010년 6840만㎾, 2011년 7025만㎾로 각각 전망했다. 2008년 정부가 확정한 ‘제4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의 최대 전력수요 전망과 비교해 오히려 수치를 낮춰 잡았다. 제4차 전력수급 기본계획 상 최대 전력수요 전망치는 2009년 6723만㎾, 2010년 6946만㎾, 2011년 7132만㎾였다. 세계 경제위기 여파로 우리나라 경제성장률과 전력수요 증가률이 예상보다 높지 않을 것으로 봤다. 한전과 발전사는 하향 조정한 전력 소비 전망치를 기준으로 발전소 증설 규모와 준공 일정을 조정했다.
하지만 이런 전망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2009년 전력 최대수요는 6680만㎾로 치솟았다.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국내 경기가 회복됐고, 기름보다는 전기를 쓰는 냉ㆍ난방기기 사용이 급증했다. 전력설비 예비율은 8.2%로 추락했다. 전력 예비율은 국내 발전소를 총 가동한 전력에서 실제 사용 전력 최대치를 뺀 비율로 13~16%를 적정치로 본다. 전력 예비율이 10% 아래면 위험한 수준이란 뜻이다.
작년 상황은 더 악화됐다. 2010년 12월 전력 최대수요는 7000만㎾ 선까지 돌파해 7131만㎾를 기록했다. 한전이 지난 2009년 전망한 수치와 비교해 300만㎾ 가까이 차이가 났다. 전력 예비율은 6.2%로 떨어졌다.
올해 전력 비상사태는 더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른 무더위로 전력난이 두 달 일찍 찾아왔다. 전력거래소가 집계한 지난 20일 오후 3시 기준 최대 전력 소비량은 전년 대비 9.5% 급증한 6687만㎾였다. 예비 전력은 522만㎾(전력 예비율 7.8%)에 불과했다. 예비 전력이 400만㎾ 아래로 떨어지면 발전소 1기만 고장나도 대규모 정전이 벌어질 수 있다. 보통 여름철 최대 전력소비 기록은 장마가 끝난 8월에 세워진다. 지식경제부는 올해 예비 전력이 420만㎾(5.6%)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20일 ‘전력수급대책본부’를 설치했다.
빠른 경기 회복, 전력 과소비 현상 심화, 이상 고온 현상에, 잘못된 전력 수요 예측까지 겹치면서 앞으로 1~2년은 아슬아슬한 전력 비상 사태를 견뎌야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현숙 기자 @oreilleneu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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