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치곤 굉장히 도전적이다. 이 말은 누구나 젊은 시절엔 마음속에 품었던 꿈과 용기가 있었다는 데서 출발한다. ‘제발 이렇게 살자’가 아닌 ‘제발 그대로 살자’는 그런 의미이리라. 사회에 찌들고 남들의 시선에 맞춰 적당히 타협하고 ‘연명하듯’ 사는 삶, 그렇게 살지 말자는 간절함이 배어 있다.
표철민(27) 위자드웍스 대표는 그의 저서 ‘제발 그대로 살아도 괜찮아’를 쓸 자격이 충분한 삶을 걸어왔다. 아니 걷고 있다. 업계에선 유명인이지만 대중들에겐 아직 낯선 이름일지 모른다. 그가 더 유명해져야 하는 이유는, 그가 걸어온 삶이 비단 젊은이뿐 아니라 이 시대 모든 사회인에게도 새로운 용기를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해 12년차 CEO에 이르기까지, 한 편의 소설을 듣는 듯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홍대 골목에 자리 잡은 위자드웍스 사무실에서 표 대표를 만났다. 무더운 햇볕 속을 뚫은 듯 숨이 찬 모습으로 그가 들어왔다. 연세대에서 특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한다. 사실 표 대표는 전국을 누비며 ‘또래 젊은이’를 대상으로 강연하는 ‘벤처정신 전도사’로도 유명하다. “강연 때문에 전국 곳곳을 가보게 되니 나름 재미도 있어요.” 27살이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달변을 쏟아내는 비결이리라.
그의 인터뷰마다 가장 먼저 나오는 얘기는 16살에 인터넷 도메인 등록 대행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첫 질문은 역으로 ‘16살 이전’부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떤 집안에서 어떻게 지냈기에 중2가 ‘겁 없이’ 사업을 시작했을까.
그가 첫 사업을 시작한 건 정확히 말하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다. 그는 “당시 아이들 사이에 인기를 끌었던 미니 레이싱카 표지 그림을 거래하는 장사를 교실에서 시작했다. 학종이를 돈처럼 주고받으며 그림을 사고 팔았는데, 그 때부터 사업하는 재미를 배운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5학년 때는 ‘잡지사’도 차렸다. 반에서 만화 잘 그리는 친구, 글을 잘 쓰는 친구와 계약서를 쓰고, 마감시간까지 종이에 원고를 받고서 복사해 아이들에게 돈을 받고 팔았다. “계약서가 지금도 있는데 내용을 보면 ‘만화가 아무개는 경쟁사로 이적할 때 왕따 당하는 걸 감수한다. 그룹 회장 표철민’이라고 써 있더라고요. 당시엔 공부보다 잡지 파는 걸 더 재밌어했었죠.”
부모의 속이 오죽 탔을까. 어렵게 얻은 외동아들인데 성적표에는 담임이 늘 ‘주의가 산만함’이라고 적어주니 말이다. 그는 “중학교 올라가면서 부모님께서 ‘제발 중학교 가면 이상한 거 하지 마라’고 신신당부했었다”며 “착실하게 중학교 1학년을 보냈는데 2학년 때 결국 일이 터진 셈”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방송부 활동 중 우연히 인터넷 도메인 등록 사업을 알게 됐고, ‘돈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신청을 받으면 도메인 등록을 대신해주는 사업인데 당시만 해도 도메인 등록 방법 등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시기였다. 그는 “이름이 좀 알려지니까 먼저 연락이 와서 도메인 등록을 해달라는 문의가 쇄도했다. 방과 후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으니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지만 잘 될 때는 하루에 200만원씩 벌게 되니까 별말씀 안 하시더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가 처음 세간의 관심을 받은 계기도 독도 도메인 때문이었다. 도메인을 모으던 중 일본 누리꾼이 독도 도메인(tokdo.co.kr)을 노리고 있단 소식을 듣곤 PC방에서 수없이 마우스를 클릭하며 얻은 도메인이라고 한다. 이후 독도사랑동호회에서 연락이 와 기증 의사를 밝힌 뒤 언론 인터뷰가 쇄도했다. 그가 세간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시기다.
하지만 역으로 이 때문에 그의 ‘알토란’ 같은 사업은 망했다. 언론에 노출되면서 그가 중학생이란 사실까지 알려졌기 때문이다. 세무서에서 중학생인 표 대표를 보곤 “장난치지 말라”며 사업자 등록증 발급도 안해줬던 시기였다.
그전까지 40대라고 속이며 다수의 기업 고객까지 유치했었지만, 언론 노출 이후 모든 게 밝혀졌다. 표 대표는 “중학생인지 몰랐다며 고객이 난리가 났고, 매출이 급감했다”며 “기사 덕분에 사업이 망한 대신 사업자 등록증은 받게 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표 대표가 번 수익은 1억원. 이후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다드림 커뮤니케이션이란 정식 회사를 설립했다. 오피스텔을 빌리고, 통상 그 나이에 어울릴만한 ‘가출’이 아닌 정식으로 ‘출가’를 감행했다. 언론에 나온 이후 전국 곳곳에서 숨어 있던 고등학생 ‘고수’들까지 속속 모였다. 또래끼리 모여 숙박을 했지만 술, 담배는 입에도 안댔다고 한다. “일하기에 너무 바빴어요.” 그가 밝힌 이유다.
대학시절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표 대표의 여정은 굴곡의 연속이었다. 웹 2.0 시대에 맞춰 새로 위자드웍스란 회사를 차렸지만 장사가 안돼 창업 맴버가 떠나는 시련도 겪었고, 위젯이 인기를 끌고 주요 포털사 및 기업에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옛 명성을 되찾기도 했다. 최근에는 루비콘게임즈를 새로 설립해 소셜게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CEO 인생 12년차, 놀랍게도 현재 그의 통장 잔고는 ‘0’에 가깝다. 사업에 모든 돈을 또다른 사업에 투자하길 반복하는 동안 사실상 모은 돈이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표 대표는 “경영이 어려울 때 대출을 받고 연대보증도 서보고..., 확실한 건 20대 중 나만큼 많은 빚을 져 봤던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웃었다.
후회가 되느냐고 물어봤다. 돌아오는 대답은 더 걸작이다. 그는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좀 더 일찍 사업에 승부를 걸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중간에 포기했다면 다음이란 기회가 없을텐데, 버티다 보니 항상 ‘다음’이란 기회가 주어졌다”며 “계속 참고 견디다 보면 궁극적으론 꿈을 향해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벤처업계에 대한 소회도 내비쳤다. 그는 “모든 후배들이 안철수 교수만 보고 시작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너무 높은 목표만 잡고 중간에 지치곤 한다. 손에 닿을 만한 거리에 있는 벤처인 롤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군대도 가야 하는데, 고민이에요.” 인터뷰를 마친 뒤 불쑥 표 대표가 군대 얘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통상 입대할 나이를 훨씬 넘겼다. 여자친구와 단둘이 여행을 가본 적도 없다고 한숨도 내쉬었다.
그 역시 20대였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가는 20대는 모두가 꿈꿔왔던, 하지만 꿈만 꿨던 20대다. 꿈을 버리지 말라고, 용기를 버리지 말라고 세상에 전파하는 표철민 대표, 그의 삶은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김상수 기자 @sang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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