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통운을 사이에 놓고 이건희 삼성 회장과 이재현 CJ 회장 간 감정대립이 극에 달하고 있다.
애시당초 CJ와 포스포 롯데의 3파전이었던 인수전이 갑자기 삼성SDS의 출연으로 복잡해진 것. 지금까지 산업계에서는 범삼성계로 통하는 삼성과 CJ는 사실상 한 몸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이다. 즉 이같은 기업 인수합병계에서는 삼성이 나서면 CJ가 빠지고 CJ가 나서면 삼성이 빠지는 형국이었다. 사전에 그룹 최고위층 간의 내부 조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대한통운 인수전의 경우 양상이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27일 본입찰 마감 결과, 대한통운 인수전은 제안서를 낸 ‘포스코ㆍ삼성SDS’컨소시엄과 CJ그룹의 2파전으로 최종 압축됐다. 예비 입찰에 참여했던 롯데는 막판에 빠졌다.
모양새로만 봐서는 물류업계 부동의 1위 기업인 대한통운을 범삼성가 안에서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속사정은 그렇지가 않다. CJ가 지금가지 대한통운 인수를 준비하면서 자문사로 둬왔던 삼성증권이 문제가 된 것이다.
삼성증권은 지난 3월부터 CJ그룹의 대한통운 인수자문을 해왔다. 최근까지 막판 입찰 가격 등을 놓고 그룹 수뇌부와 적정선을 조율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지난 23일, 본 입찰을 5일 남겨둔 시점에서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SDS가 CJ그룹의 인수전 경쟁자인 포스코와 손잡고 대한통운 인수전에서 뛰어든다고 발표한다. 자연스럽게 삼성증권과 CJ그룹은 인수자문 관계를 끝맸는다.
업계에서는 당연히 삼성의 인수 참여로 CJ가 롯데와 같이 인수를 포기할 줄 알았지만 양 그룹의 수뇌부는 이 사안에 대해 전혀 조율되지 않는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CJ측은 삼성증권에 대해 이례적으로 “M&A(인수·합병)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비도덕적인 행태이며, 배신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삼성증권이 CJ가 제시할 인수 가격, 자금 조달 계획 등 핵심 기밀 사안을 훤히 알고 있었고, 삼성SDS가 포스코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과정에서도 ‘모종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CJ그룹은 “삼성증권의 이중 플레이 배후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재현 CJ 회장이 삼촌인 이건희 삼성 회장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에게 대한통운 인수 지원을 요청했는데도 정반대 결과가 나타난 것은 이건희 회장 입김이 없고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CJ측 고위 인사들은 대한통운 인수와 관련한 정당성을 논하는 자리에서는 항상 “대한통운에 범 삼성 측 물량을 끌어올 수 있는 능력에서 포스코와 롯데 등에서 비해 CJ가 새주인으로 적격”이라고 주장해 오던 터였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삼성SDS가 포스코와 손을 잡으면서 설득력을 완전히 잃었다.
심지어 지난해 11월에는 CJ GLS에서 대한통운 인수의 기초를 닦아놓은 김홍창 사장을 그룹의 구심점인 제일제당 사장으로 영전시키기도 했다. 김 전 사장은 지난 5월 건강상의 이유로 제일제단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대한통운 인수를 얼마나 비중있게 생각하는지가 간접적으로 보여진 대목이다.
삼성은 “대한통운 인수는 그룹 계열사의 비즈니스 전략 차원에서 결정한 것이며, CJ가 비난한다고 해서 양보할 사안이 아니다”는 입장만 내놓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SDS의 지분 투자는 그룹 승인 사항이지만 삼성증권이 CJ를 자문하는 것은 승인 사항이 아니다”면서 “삼성SDS나 미래전략실이 미리 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IT 전산 시스템을 구축·관리하는 삼성SDS는 지난 6월 초부터 포스코 컨소시엄 참여를 검토했으며, 대한통운 지분 5%를 인수하는 데 약 2000억원을 투자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S 고위 관계자는 “포스코가 대한통운을 키우면 삼성SDS에 IT 물류 시스템 수주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CJ측은 삼성이 같은 집안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비신사적인 태토를 보였다는 입장이다. 삼성SDS가 인수전 참여를 선언하기 불과 3일전에도 삼성증권은 CJ그룹과 대한통운 인수금액은 물론 인수 후 육성방안 등을 놓고 깊이 있는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CJ그룹은 삼성SDS가 일부러 삼성증권을 통해 CJ그룹의 복심을 충분히 파악한 후 인수전에 뛰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CJ그룹 관계자는 “우리는 왜 삼성SDS가 본 입찰 5일 전에서야 결정했는지 그 배경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CJ 입장에선 삼성SDS가 CJ 측 전략을 충분히 알고 나서 인수전 참여를 결정한 것 아니냐고 본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삼성의 복심을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8.81%) 등 이건희 회장의 자녀들이 비상장 회사인 삼성SDS 지분을 대거 보유하고 있는 점을 들어 “삼성이 삼성SDS를 본격적으로 키우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해외 물류망이 없는 삼성그룹이 5조원이 넘는 글로벌 물류 물량을 대한통운에 몰아주고 삼성SDS는 IT 물류 시스템 구축을 맡는 조감도가 그려지는 대목이다.
CJ그룹은 삼성증권을 상대로 페어플레이에 위반되는 행동을 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대한통운 인수로 불거진 범삼성 가의 삼촌ㆍ조카 사이의 법정다툼이 현실화 될 지 재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헤럴드생생뉴스/onlinenew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