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예상대로 물가와 가계 부채 문제보다 경기 둔화 우려가 더 컸다.
끝없이 확산되는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등 선진국의 경기 둔화가 국내 경기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치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8일 현 3.25%인 기준금리를 묶어두기로 결정했다. 지난 6월 이후 3개월째다.
특히 이달 들어 재부각된 ‘유럽 리스크’가 기준금리 동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장기금리가 다시 상승했고, 유럽 주요 은행들의 신용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이 금융위기 때보다 높아지면서 신용 경색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유럽 금융구제 당국이 21개국 90개 은행을 대상으로 실시한 스트레스테스트 결과에 따르면 유럽 금융기관들의 자본 확충 규모는 25억유로에 불과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달 안에 내놓을 글로벌 금융 안정 보고서에서 유럽 금융기관의 자본 확충 규모가 2000억유로에 달한다고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IMF가 유로존 전체의 ‘신용 경색→금융 시스템 붕괴→실물 경제 침체’로 이어지는 ‘시스템 붕괴’ 가능성을 경고하는 것으로 일부 시장전문가는 해석하고 있다.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올리는 건 무리였다.
한은은 이날 금통위의 기준금리 동결 직후 배포한 ‘최근의 국내외 경제동향’ 자료를 통해 “국내 경기는 상승국면에서 횡보하는 모습”이라며 올들어 처음으로 국내경기에 대한 설명에서 ‘횡보한다’는 단어를 썼다.
한은은 “앞으로 우리 경제는 장기 추세치 수준의 성장세를 보이겠으나 미국 등 주요국의 경기 회복세 약화, 유럽 국가채무 문제 확산 등이 성장의 하방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진단했다.
하지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와 급증하는 가계 부채 문제를 보면 금통위의 3개월 연속 기준금리 동결을 이해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2008년 9월 이후 35개월 만에 5% 선을 넘어섰고, 올 들어 8개월 연속 한국은행의 중기 물가 안정 목표 범위를 초과했다. 지난달 한은법 개정안이 통과돼 한은의 설립 목적에 금융 안정 기능이 추가됐지만 그래도 한은의 존재 이유는 통화 신용 정책을 통한 물가 안정에 있다. 이 정도면 금통위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 6월 말 가계 부채 연착륙 대책이 나온 이후 7~8월 가계 대출이 4년 만에 가장 큰 폭인 10조원 이상 늘면서 정부의 대책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 것 역시 근본적으로는 저금리 기대심리에 따른 가수요 때문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날 기준금리 동결 이후 시장에서는 4분기 이후나 돼야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한 차례 정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시중금리도 아래쪽으로 흘러가는 중이다.
<신창훈 기자 @1chuns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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