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개막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선 출품된 영화뿐 아니라 거대한 스크린도 영화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영화제 메인 행사가 진행된 영화제 전용건물 ‘영화의전당’의 길이 163m, 폭 62m, 무게 4000t에 이르는 지붕 ‘빅 루프’였다. 매일 밤 펼쳐지는 12만개의 LED 전구로 이뤄진 빛의 향연은 영화제의 또 다른 볼거리다.
전에 보지 못했던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물을 본 사람들이 연방 탄성을 지를 때마다 한쪽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는 이가 있었다. 영화의전당 시공을 맡았던 한진중공업의 공사 현장 총책임자 장범택<사진> 소장이다. 장 소장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이 건물을 ‘예술작품’이라 칭하며 “부산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이자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발전상을 대표할 만한 작품을 만들었다는 데에 자긍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사실 영화의전당을 개관하기까지, 모든 이가 예상하는 것처럼, 상당한 어려움이 따랐다. 국제 공모를 통해 채택된 오스트리아의 쿱힘멜블라우 사(社)의 설계는 그들 특유의 ‘해체주의’ 형식이 가미돼 건물 대부분의 구조가 비대칭으로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어느 곳도 예사롭지 않은 조형미를 강조한 탓에 무엇보다 구조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기존 건물을 지을 때보다 몇 배의 심혈을 기울였다. 비정형의 아름다움을 완성하기 위한 자재 공수에도 애를 먹었다.
장 소장은 “설계도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고민이 끊이지 않은 건물이었다”고 토로하며 “가장 큰 걱정은 한 축으로만 이뤄진 기둥이 그 거대한 지붕을 구조적으로 지탱할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 들어올린 지붕을 여러 개의 철골로 얽어 만든 기둥에 접합하고 나서야 조금이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러한 켄틸레버 루프 트러스 구조물은 과거 20년여년간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장 소장도 처음 경험하는 공사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장 소장은 기술력을 단 한번도 의심하진 않았다. 거대한 지붕을 지상에서 완성한 뒤 4개의 기둥으로 각 모서리를 받쳐 30~50m가량 위로 들어올려 설치하는 리프트 업(lift up) 공법은 인천국제공항, 영종대교 공사 등에서도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경험이 있었다. 다만 이번엔 지붕은 비대칭구조로 인해 4개 기둥의 하중이 제각각이었던 탓에 복잡한 공학적 계산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 공법을 통해 공사 기간을 3개월이나 단축할 수 있었다.
그는 “건축가는 본능적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나가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곤 한다”며 “나나 직원들도 그런 도전의식을 품는 한편, 최대한 안전한 건물로 완성하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사에 매달렸다”고 회상했다. 덕분에 총 3년에 이르는 공사 기간에 가족 얼굴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남편이자 아버지의 작품을 자랑스러워할 가족들을 가장 먼저 초대해 영화제에 앞서 선보였다.
장 소장은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면서도 “아직 할 일이 적잖이 남았다”고 밝혔다. 영화제 개막에 앞서 개관하기 위해 공기 막판에 온 힘을 쏟은 탓에 입안이 까칠하고 금방이라도 탈진할 만큼 체력도 바닥난 상태지만 여전히 이곳저곳 손볼 곳이 많다고 하는 장 소장이다. 그런 그와 동료들이 있기에 부산국제영화제도 더욱 빛이 난다.
백웅기 기자/kgungi@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