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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신 못 차린 유로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가 세계경제를 뒤흔들고 있는데도 정작 원인제공자인 유로존 국가들은 해법을 제대로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며 제 잇속 차리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위기의 근원으로 사실상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인 그리스는 공무원들이 파업에 나서고 있다. 그나마 해법으로 제시됐던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증액안도 유로존 최빈국 중의 하나인 슬로바키아 의회에서 부결되는 상황까지 빚어지고 있다.

■유로존 최빈국, 세계경제 발목=최빈국 슬로바키아가 세계경제를 뒤흔들었다. 슬로바키아 의회는 11일(이하 현지시간) 유로존 재정위기 해법인 유럽재정안정기금 증액안을 부결시켰다. 이에 따라 유로존의 재정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도 벽에 부딪혔다. 세계경제를 위태롭게 하는 유로존의 미래 역시 한 치 앞을 내다볼수 없게 됐다.

이날 슬로바키아 의회에서 표결이 실시된 EFSF 법안은 승인에 필요한 과반(76석)의 찬성표에 21표가 부족한 55표의 찬성을 얻는 데 그쳤다.

4개 정당으로 구성된 연립정부 내 제2당인 ‘자유와연대(SaS)’가 법안을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난한 나라가 부자 나라를 도울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법안이 가결되면 인구 550만명의 슬로바키아 분담금은 당초 43억7100만유로에서 77억2700만유로로 늘어나게 된다.

이베타 라디코바 총리가 정부 신임과 연계한 이번 법안이 부결됨에 따라 현 내각도 실각하게 됐다. 슬로바키아 의회는 이르면 13~14일께 재투표를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EFSF 증액안은 지난 7월 유럽 각국 정상들이 EFSF의 실질 대출여력을 2500억유로에서 4400억유로로 늘리기로 합의한 안이다. 이 법안이 발효되기 위해서는 유로존 17개 회원국이 모두 승인해야 한다. 앞서 16개국은 모두 가결했지만 슬로바키아가 제동을 걸면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로존 회원국 지원도 당분간 어렵게 됐다.

유로존은 당장 돈가뭄에 시달리는 유럽 은행의 자본확충과 그리스 추가 구제금융 지원을 위해 막대한 자금이 시급한 상황. 유로존 위기 해법은 최빈국 슬로바키아의 정치논리에 발목을 잡힌 셈이다.

■자국 이기주의에 빠진 유로존=위기는 깊어지고 답은 없는 와중에 유로존 각국의 이해관계는 실타래처럼 꼬여가고 있다. 위기 해법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자국 이기주의마저 팽배해 있다.

재정위기를 키운 나라에서는 긴축재정에 반발하고, 지원국에서는 주머니를 더 열 수 없다는 논리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회원국 모두 동의를 얻어야 하는 유로존의 의사결정 구조도 리더십을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경제위기는 빠르게 전이되는데, 정치적 결정은 게걸음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유로존 위기의 진원지인 그리스에서는 긴축재정을 반대하는 시위가 연일 강도를 높이고 있다. 정권 리더십도 바닥에 추락했다. 그리스 재정위기는 2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유로존 위기로 번졌지만, 긴축재정계획은 번번이 차질을 빚고 있다.

유로존 3위 경제국인 이탈리아도 마찬가지다. 부패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권은 경제위기를 키웠다. 이탈리아는 1조9000억유로(2900조원)에 달하는 채무로 곳간이 거덜난 상황.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성년 성매매와 권력 남용, 뇌물 제공 등 각종 추문으로 모럴 해저드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최근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도 국가신용등급을 3단계나 강등한 이유로 취약한 정치권의 위기관리능력을 꼽았다.

재정위기국을 돕는 지원국들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경제대국 독일은 자국 이익을 생각하면서 돈풀기를 주저하다가 유로존 위기를 키웠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슬로바키아 등에서도 정치논리를 둘러싸고 힘겨루기가 치열하다.

역내 빈부갈등도 유로존 위기 해법의 장애물이다. 자국 세금으로 다른 나라를 돕기 싫다는 부자나라의 여론과, 부자나라 위주의 금융정책이 자국의 빚을 늘렸다고 믿는 재정위기국의 여론이 정면 충돌하고 있는 것. 유로화란 단일 통화 아래 묶여 있지만 경제체급은 달라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해진 유로존이 위기 해법을 위해 의기투합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회원국마다 자기 잇속 차리기에 나서면서 유로존 위기 해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권도경 기자/kong@heraldcorp.com




윤정식기자0000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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