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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티박스> 감정노동자 캐디 <下>
한 고객은 완전 산으로 OB, 한 고객은 해저드 퐁당이다. 그런데 해저드 들어간 고객이 믿을 수 없단다. 본인이 그렇게 거리가 조금 나가는 사람이 아니란다. 아무튼 해저드티로 이동하고 그 근처에서 볼을 찾는 시늉을 한다. 그러다가 다른 볼을 하나 주웠다. 그래서 해저드에 들어간 고객에게 드리려고 볼을 닦았다.

그런데 한 고객이 계속 지켜보더니 나에게 온다. 그러더니 “그 볼 뭐야? 줘봐” 한다. 좀 얄미웠다. 볼을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여지껏 내 카트에 있던 로스트 볼을 말도 안하고 계속 썼던 고객인데 이 볼도 탐이 났던가보다. 그래서 “고객님 볼 아니고, 저 고객님 드릴 것”이라고 볼멘소리로 말했다.

그랬더니 “××년, 말 ×같이 하네. 아까부터 참고 있었는데…”라며 욕을 한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뭐 이런 게 있나 싶었다. 계속 홀 비워, 볼도 못 쳐, 자기들 볼도 못 봐, 스코어도 못 세, 3~4퍼팅 해도 다 놓아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볼을 주워서 해저드 들어간 고객 주려는데 자기 안 준다고 욕을 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옷 벗을 각오하고 대들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이게 지금 저한테 그런 욕할 상황입니까? 이 볼을 제가 가진다는 것도 아니고 해저드 들어간 고객님 드린다고 한 제 말이 뭐 잘못됐습니까?”로 시작해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해버렸다. 그러고 있으면서 서서히 제정신이 돌아온다. 아차!

맘속으로 어떻게 정리를 하지 하는데, 한 고객이 말린다. “언니가 이해하소. 우리가 잘 몰라서 그런 거니까. 이제 좀 잘 도와줄게.” 그 말에 다짐을 한다. 그래 참자. 그러고는 고객에게 사과를 한다. “죄송합니다. 저도 지금 상황이 넘 안 좋아서 고객님에게 무례하게 굴었습니다”라고 말하며 라운딩을 계속해 나갔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앙금이 남아 있다.

18홀을 어찌 돌았는지 모르겠다. 마지막에 인사하면서 다시 한 번 사과를 한다. 그러고 사무실에 들어왔다. 울음이 터졌다. 너무 서러웠다. 10년을 넘게 이 일을 했지만 욕을 들어보기는 처음이다. 혼자서 캐디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기도 했다. 늘 프로라는 생각으로 이 일을 했는데 그 고객 덕분에 난 그날 내가 제일 밑바닥 인생같다는 생각도 했다. 정말 슬펐다.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몸서리쳐진다. 하지만 난 오늘도 라운딩을 나간다. 모든 고객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니까 또 다시 웃으며 라운딩을 한다. 그런데 지금도 가끔 생각을 한다. 과연 진정한 캐디의 의미가 뭘까.

<쎄듀골프서비스연구소 차돌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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