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웹진 이프의 공동대표인 유숙열 씨는 17일 ‘내게 팬티를 사준 남자, 이근안에게…’이라는 글을 특별기고했다. 그는 1980년 7월 17일 합동통신 2년차 기자로 활동하던 중 대공분실에 끌려가 이근안에게 고문을 당했다고 밝혔다.
유 씨가 끌려간 이유는 5·18 계엄확대 발표 이후 지명수배로 쫓기고 있던 김태홍 전 의원의 피신처를 소개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의원은 당시 한국기자협회 회장이었다.
유 씨는 “나는 솔직히 사람 하나 숨긴 것이 무슨 그리 큰 죄이며 설마 나를 죽이기야 하겠느냐 뭐 그런 생각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담담했다”면서 “그러나 그들은 기를 죽이려는듯 처음에는 험악한 말로 욕설을 퍼부으며 협박을 했다가, 정중하게 ‘기자’ 대접을 했다가, 또 다시 뒷덜미를 잡고 물이 담긴 욕조에 머리를 쑤셔박았다가 하는 등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작전을 썼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이어 유 씨는 “얼굴 위로 수건이 덮어 씌워졌고 다음 순간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면서 “물고문 한번 당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온 몸이 물에 젖어 한 여름인데도 사시나무 떨듯이 몸이 떨려왔고 담요를 여러장 뒤집어써도 추위가 가시질 않았다”고 써내려갔다.
유숙열씨가 공개한 사진. 왼쪽부터 고승우(80년 해직기자 협의회 대표), 정남기(전 언론재단 이사장), 이문승(전 연합뉴스 논설위원), 유씨. |
그러던 중 유 씨는 다른 고문실로 옮겨져 이근안을 만났다. 그는 “누군가 내게 칠성판 위로 올라가라는 신호를 보냈고 난 그 위에 올라가 본능적으로 몸을 엎드렸다”며 “그러자 다시 누군가 돌아누우라고 했고 돌아누운 내 몸 위에 버클이 주루룩 채워지며 육중한 몸집의 남자가 올라탔다. 그가 바로 이근안이었다”고 폭로했다.
탈진해 쓰러져 있던 유 씨에게 또다른 곤란한 상황이 닥쳤다. 때 이른 생리가 시작된 것이다. 유 씨는 자신을 고문한 이근안을 불러 “아저씨… 저 생리가 터졌는데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근안은 주위 동료들 앞에서 ‘내가 생전 여자 속옷을 사봤어야지. 가게 가서 얼마나 챙피했는지 아냐?’면서 마치 무용담을 털어놓듯이 호들갑스럽게 여자 팬티 사온 얘기를 떠벌렸다고 털어놨다.
이 글에서 유 대표는 고문기술자 이 씨가 목사가 됐다는 사실에 대해 “내가 느낀 황당함이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라며 “남들이 당신을 목사직에서 끌어내리기 전에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 오십시요. 그리고 무언가 일을 해야 한다면 차라리 청소부가 되어서 묵묵하게 자신의 죄를 씻고 또 씻으라”고 촉구했다.
공교롭게도 이 글이 공개된 17일은 이근안의 목사직 면직 판결이 내려진 뒤였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개혁총회 교무처장 이도엽 목사는 19일 “교단은 이근안씨가 목사로서 품위와 교단의 위상을 떨어뜨렸으며 겸손하게 선교하겠다는 약속도 어겼다고 판단해 징계를 내렸다. 한 번 면직되면 복직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혜미 기자 @blue_kn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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