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파가 그치지 않았던 젊은 시절. 허나 시간이 흐르니 박 할아버지의 삶도 안정이 됐다. 두 딸과 아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웠다. 생활에도 여유가 생겼다. 박 할아버지는 그제서야 자신을 돌아봤다. 초등학교 조차 졸업하지 못한 지난 날이 한스러웠다. 짧은 학력이 늘 부끄러워 남들에게 들킬까 감추기 바빴던 박 할아버지. 2008년 3월 할아버지는 4년제 학력인정 초등학교인 서울 양원초등학교에 입학하며 늦깎이 초등학생이 됐다.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수학은 아무리 해도 어렵고 영어는 매일 들어도 잊어버리지만” 공부만큼 재밌는 일은 없었다. 중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며 할아버지는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2010년 갑작스러운 암 선고를 받기 전까진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피골이 상접해지고 체력이 예전같지 않았다. 병원을 찾았다. 췌장신경성 내분비종양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여러병원을 전전하며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그 탓에 암세포와 더불어 정상세포까지 죽게 돼 상태는 점차 악화됐다. 그렇게 좋아하던 공부도 잠시 내려놔야했다. 3개월여를 학교에 나가지 못했다. 그 사이 암세포는 간까지 전이됐다.
갑작스레 상태가 악화되면 며칠씩 결석을 하기 일쑤지만 그래도 박 할아버지는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다.지난해 다시 복학한 박 할아버지는 학교에서 치르는 영어, 한자, 수학 시험 등도 늘 만점을 받으며 우수한 성적을 보였다.
병마와 싸우며 노력을 한 끝에 박 할아버지는 오는 22일 졸업을 맞는다. 그는 서울 종로구 소재 모 중학교에 입학할 예정이다. 병마와 싸우며 자랑스러운 졸업을 맞이하고도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해온 박 할아버지. 결국 신원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어렵사리 인터뷰에 응한 그 속내에는 “아직 공부가 부족한 내 모습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이 자리하고 있다.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사람이 되어간다는 증거죠. 아픈 와중에도 학교생활이 너무 행복했어요. 공부 자체가 내 삶의 큰 기쁨 중 하나입니다. ” 박 할아버지의 얼굴엔 암 투병 환자의 고통이 아닌 학업에 대한 열의가 가득차 있었다.
박수진ㆍ윤현종 기자/sjp10@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