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공원의 환경미화를 담당하고 있다.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공원을 정리정돈 하는 게 A씨의 일과.
영등포역 인근에서 평소처럼 어슬렁대던 어느 날 구청 관계자가 제안한 ‘인문학 교육’이 A씨의 일상을 바꿔놓았다. 하루 만 원씩 차비를 지급한다는 말, 말소된 주민등록증을 살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말에 솔깃해 인문학 교육에 참여했다. 그렇게 일주일에 두 번씩 교육을 받고 두 달 후, 졸업이란 걸 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성취감이었다. 조길형 영등포구청장이 몇 학생에게 일자리를 추천했다. A씨는 그 안에 당당히 포함됐다. 겨울 동안 임시로 묵을 주거도 지원해줬다. 두 평 남짓한 고시원이지만 기댈 공간이 생겼다.
그때부터 A씨의 생활은 달라졌다. 희망이 없고, 우울했고, 미래를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주민등록증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던 용역 일에서도 거부당하던 그였다. 혈압이 높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 모든 게 해결됐다. 일을 시작하자마자 술을 끊어 혈압도 좋아지고 있다. 술을 끊으니 모든 게 술술 풀린다.
두고 온 가족 생각은 여전하다. 동생, 누님 등과 함께 살던 A씨 가족은 A씨가 IMF 이후 일하던 조선소에서 쫓겨나면서 힘든 생활을 시작했다. 100만원 남짓한 돈을 들고 혼자 서울에 올라왔다 밀린 의료보험비 때문에 통장 거래가 막혔고 그 길로 거리에 나앉게 되었다. 돈이 없어서, 면목이 없어서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영등포 대합실 인근을 어슬렁대며 정처없이 방황하던 그에게 ‘살 길’을 터준 것이 상담센터였다.
이씨는 “노숙을 해 보니까 자활을 막는 유혹이 있다”고 말한다. 1000만원 가까이 돈을 모아놓고도 노숙할 때의 편안함이 그리워 다시 영등포 바닥으로 돌아온다는 것. 술, 도박, PC 중독 등도 자활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일정한 주거’를 갖고 싶다는 A씨에게는 이런 유혹이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돈을 모으기 위해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무료급식소에서 매 끼 식사를 해결하는 생활이 즐겁기만 하다. 공원을 쓸고, 닦고, 삐걱대는 기계에 윤활유를 칠하는 일은 어느새 그의 천직이 됐다. 물론 날이 풀리면서 사람이 많아지면 공원을 찾은 이들 중에서 자신을 알아볼까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한다.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2년 쯤 지나면 가족들에게도 연락을 해 볼 생각이다. 일흔이 넘은 누님이 눈에 밟히지만 지금은 연락해 만난다 한들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다. 돈을 모아 고시원을 벗어나 ‘내 집’을 마련하면 누님과 동생을 부르고 싶다며, 다시 천진한 웃음을 보였다. 때마침 비치는 햇살 때문일까, 그의 웃음이 겨울 추위 속에서 더 따스하게 느껴졌다.
서지혜 기자/gyelov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