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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매매리포트> 29살 크리스틴의 2012년 기지촌 아리랑
가게문 앞에만 나가도 벌금, 살쪘다고 벌금



“자유시간은 오후 1시부터 5시 사이인데, 실제 자유가 아닙니다. 그 중 한 시간만 허용되었습니다. 나갈 때 허락받고 나가야 하고, 혼자 나갈 수 없었습니다. 한국 여성과 같이 나가야 했습니다. 외출시간 1시간을 어기면 처음은 야단맞고, 또 어기면 벌금 5만원과 함께 핸드폰을 압수당합니다.”

가슴이 턱 막혔다. 탈북자들의 강제 북송 소식으로 인간의 기본권 유린에 대한 사회적인 공분이 커지는 상황에서 입수된 여성가족부의 ‘외국인 여성 성매매 실태 보고서’는 기자의 눈을 의심케했다.

98명의 외국인 성매매 여성을 설문하고 21명의 심층 면접 내용이 담긴 226페이지 보고서는 CCTV의 감시 속에 마음대로 외출도 못하고 가게 문 앞에만 나가도 벌금을 내야하고, 살쪘다고 벌금을 내는 상황을 세밀하게 고발하고 있었다.

필리핀 출신인 크리스틴(가명ㆍ29)은 경기도 평택 외국인전용 클럽에서 일한다. 그는 업소를 찾는 외국인을 상대로 한 달에 주스 1잔에 1점으로 계산되는 음료를 팔아야 했다.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그는 업소 화장실 옆에 마련된 6개의 쪽방에서 핸드잡(Hand Job) 등 유사 성행위를 해야 했다. 음료 판매 할당을 채우기 못하면 성매매를 뜻하는 바파인(Bar Fine)을 강요받았다.

그들의 일상은 철저한 감시와 통제, 그리고 각종 벌금 속에 묶여 있었다. 업소에 설치된 CCTV를 통해 외부 출입이 통제됐고, 숙소 입구도 업소 주인 방의 모니터와 연결된 CCTV를 피할 수 없었다. 일이 끝나면, 업소 위층의 숙소에 갇혀 지내야 했으며, 숙소 내에서는 한국 여성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짧디 짧은 자유시간에도 마음대로 활동할 수 없었다. ‘보디가드’라고 불리는 사람에게 항상 감시를 받았으며, 외출 중에도 업소 주인에게 수시로 장소 등을 보고해야 했다. 인간의 기본권인 거주ㆍ이동의 자유를 막는 상황이 북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비지니스라는 명목으로 자행되고 있는 셈이다.

기지촌 인근 외국인전용클럽에서 일하는 여성은 필리핀 출신이 많다. 이들은 예술흥행사증을 받아 국내에 들어오는데, 상당수가 크리스틴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보고서에서도 외국인 성매매 설문에 응한 98명의 여성 중 56명이 필리핀 출신이었다. 이들은 한 달 내내 손님을 접대하고도 손에 쥐는 것은 138만원 뿐이었다.

기본 인권조차 무참히 짖밟히고 있는 외국인 성매매 여성이 우리나라에 어느정도 있는 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그리고 정확하게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이번 심층 조사에서도 설문에 응한 여성의 99%는 성매매에 하지 않는다고 설문에 답했지만, 심층 조사에선 대부분이 성매매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는 사실이 여과없이 드러났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140만명. 이들 중 44%가 여성이다. 20세기말까지는 생산직 근로자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결혼이민자, 유학생, 관광 취업자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들 또한 제 2의 크리스틴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보고는 부끄럽지만 부인하기 힘든 2012년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박도제ㆍ박병국 기자/pdj2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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