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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라리 두드려 맞는 게...." 하이마트 협력업체 사장은 왜 자살을 택했나?
“차라리 두드려 맞는 게 낫다.”

검찰에서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의 횡령 관련 참고인 조사를 받던 박회근(53) 삼지하이텍 사장이 그의 절친한 고향친구인 A(53)씨에게 털어놓은 말이다. 박 사장은 그리고 지난 4일 새벽 5시10분께 자신의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잘나가던, 그러나 하이마트라는 거대 유통 공룡을 만나 하루 아침에 범죄자 취급을 받았던 박 사장. 그가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삶을 등진 이유는 뭘까.

헤럴드경제는 지난 4일 밤 그의 빈소에서 그의 아내와 박 사장이 검찰 수사과정에서 함께 술을 마시며 마음을 털어놨던 A씨의 얘기를 들어봤다.

한 달여 전 쯤, 박 사장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로부터 참고인 조사를 받으라는 호출을 받았다. 다른 납품업체 사람들도 조사를 받는다고 하니 그러려니했다. 대검 중수부에서 처음 조사를 받던 박 사장은 A씨에게 전화를 걸어 “고소사건도 아니고 사람 죽인 것도 아닌데 사건이 왜 대검 중수부로 갔냐”며 “저녁 먹고 계속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데, 좀 늦겠다”고 알려왔다. 첫날 오후 1시께 대검 청사에 들어선 그는 밤 11시가 다돼서야 귀가했다.

하이마트 선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지난 3월 28일 이후 대검 중수부의 박 사장에 대한 조사 수위는 높아졌다.

박 사장은 술자리에서 힘들고 지쳤다고 A씨에게 털어놨다. 그는 “ (영장이)기각 되면서 수사 강도가 더 심해졌다. 더 압박을 한다”며 “분명히 선 회장한테 준 게 없는데 자꾸 준 거라고 검찰에서 압박한다”고 말했다.

평소 힘든 일이 있어도 집에다 얘기하는 성격이 아니었던 박 사장. 아내와 자식들에게는 일절 검찰에서 조사 받는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는 게 A씨의 말이다.

오로지 그는 모든 심적 압박감을 혼자 짊어졌다. 특히 가족과 연결시키는 부분에 있어서는 참고 견디기 힘들었다고 A씨는 전한다. 큰아들이 군대 가기 전에 자신의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돈을 나중에 준 사실에 대해 검찰이 캐물었다. 박 사장은 A씨에게 “검찰 측이 협조 안 하면 자식까지 불러 조사하겠다는 말을 하더라”며 괴로워했다.

일주일에 한 두번씩 검찰 조사를 받던 중 지난달 31일. 박 사장은 다시 A씨에게 전화를 했다. 밤 11시를 넘은 시각. 박 사장은 술 한 잔 하자며 서울 문래동 A씨 집 근처를 찾았다. 박 사장은 “너무 괴롭고 힘들다.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하소연을 했다. 박 사장은 “딴 데서 한 게 그리로 넘어간 게 아닌가 싶다. 다른 데는 (로비)했다 얘기도 했는데 (하이마트에도 로비했다고)인정을 하라며, ‘계속 해라 해라 이건 분명하다’고 압박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나는 아닌데 아니라고 얘기하면 뭐라고 하고 또 얘기를 안 하면 얘기를 안 한다고 뭐라고 하고 미치겠다. 10시간 동안 사람을 그렇게 하니 미치겠다. 차라리 두드려 맞는 게 낫다”고 호소했다.

박 사장은 일요일인 지난 1일 오후 4시께 다시 A씨를 만났다. 그는 “월요일 1시반쯤 중수부 간다. 또 출두를 하라 그런다”고 전했다. A씨는 “힘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다시 조사를 받던 지난 2일. 박 사장은 “검찰 수사관이 ‘오늘은 긴급체포 하겠다. 못 나간다’라는 말을 했다”고 A씨에게 털어놨다. 박 사장은 검찰 수사관에게 “내가 집에 좀 갔다오고 내일 다시 와서 조사를 받을 테니 보내 달라”고 하자 조사관은 “나가서 누구하고 통화도 하지 말고 만나지도 말라”고 입단속을 시켰다고 한다.

그렇게 조사를 받고 자정이 넘은 시각, 다시 유일한 위안처인 A씨를 만났다. 맥주 호프 한 잔을 앞에 두고 두 사람은 얘기를 나눴고, 박 사장은 “정말 못살겠다. 죽겠다. 거짓말이라도 할까”라고 말했다. A씨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거짓말 해도 그대로 인정되는 것도 아니고 그것도 증거가 있어야 하니까 결국 죄를 짓는 거다”고 설득했다고 했다. A씨는 헤어지며 다시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라”는 내용의 문자를 박 사장에게 보냈다.

3일 오후 4시께 A씨의 휴대폰이 울렸다. 박 사장의 010-××××-××××번호였다. 다만 목소리의 주인공은 박 사장이 아니었다. 검찰 수사관이었다. 다짜고짜 A씨에게 검찰에 출석하라는 얘기를 했다.

몇 시간 뒤 대검 중수부 조사실에 도착한 A씨. 깜짝 놀랐다. 조사실 책상에는 자신과 박 사장과의 통화 시각, 문자 메시지 발신기록이 널부러져 있었다. 검찰 수사관은 특별히 조사를 하는 것도 없이 30여분 A씨를 기다리게 한 뒤 그냥 돌아가라는 말을 했다. A씨가 박 사장을 마지막으로 본 게 이때다.

4일 오전 10시에 또다시 검찰에 가야했던 박 사장. 아내에게는 사무실에 일찍 들러 일할 게 있다며 일찍 나왔다. 그가 살고 있는 서울 목동 아파트 5층. 5층 높이에서는 투신 자살이 힘들다고 생각했을까. 그는 머뭇거리다 위층으로 올라갔다. 이 모습은 CCTV를 통해 확인됐다.

그리고 그는 4일 새벽 5시10분께 아파트 1층에서 발견됐다. 온기도 없는, 친구와 술 한 잔을 나눌 수도 없는, 아내에게 따뜻한 얘기를 할 수도 없는, 자식들에게 아빠의 사랑을 줄 수도 없는 그런 싸늘한 모습이었다.

박 사장의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한편 검찰은 “검찰도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다시 한 번 유족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박사장을 조사했던 실무진 등을 상대로 강압수사가 있었는지 진상조사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태형ㆍ김현경 기자/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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