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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이스트 현장 르포>학교는 ‘쉬쉬’ 학생은 ‘침묵’…빈소 한 곳 마련되지 않은 카이스트
[헤럴드경제=박수진ㆍ정진영(대전)기자]지난 해 학생 및 교수의 잇따른 자살로 학교 전체가 통탄에 빠졌던 카이스트. 1년 만에 다시 재학생이 기숙사건물에서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학교와 학생들은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캠퍼스의 표정은 지난해와는 사뭇 달랐다. 고인에 대한 빈소가 마련되고 학내 게시판에 고인을 추모하는 글들과 학교 당국을 규탄하는 학생 사회의 글들이 빼곡했던 지난 해와는 달리 학내에는 빈소 하나 마련돼있지 않았다. 학교와 총학생회 측은 “유족이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17-18일 이틀간 대전 구성동 카이스트 캠퍼스 내에서 만난 학생들은 말을 아꼈다. 침통함을 감추진 못했지만 외부로 일이 알려지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2학년에 재학 중인 A(21)씨는 “혹시나 지금 방황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이 소식을 듣고 더 혼란에 빠지거나 방황을 하진 않을지 걱정이 된다”면서도 그 이상의 언급은 피했다. 1학년에 재학 중인 B(19)씨도 “다들 안타까워 하고 있다. 하지만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다. 학내 게시판에서도 ‘말을 아끼자’는 의견이 많다. 일부러라도 관심을 두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잇딴 자살 사고로 카이스트가 여론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표현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3학년에 재학 중인 C(21)씨는 “이 문제가 카이스트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진로에 대한 걱정으로 자살하는 일이 우리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지 않나. 언론이 카이스트에만 집중하는 것이 불만”이라고 말했다.

카이스트 측은 지난 17일 사고 발생 직후 서남표 총장 주재 하에 긴급 회의를 진행했다. 또 교학총장ㆍ학생지원본부장ㆍ학생생활처장ㆍ상담센터장ㆍ학생부장ㆍ홍보실장과 학부ㆍ대학원 총학생회장 증 8명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재발방지에 나섰다. 카이스트 홍보실은 내부 포털 및 게시판을 통해 ‘개별적인 외부 접촉을 자제해달라’는 공지를 띄우기도 했다. 언론 등 외부와의 접촉을 홍보실로 일원화 해 학교 측의 공식 입장만 전달하고 있다.

일부 학생들은 학교 측의 이러한 조치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카이스트 내부 게시판에는 “학교는 이번 사건이나 그 이전 사건들이 그냥 학교의 명예를 떨어뜨린 사건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학교의 명예 때문에 대충 꼬리자르기로 넘어가면 안된다. 고인과 우리 구성원들을 위한 진실된 처리와 고민을 부탁한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지난 해 카이스트 자살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학점의 징벌적 성격의 수업료 차등 징수제 폐지, 전과목 영어강의 완화 등에 대해서도 학교 측과 학생 간의 의견이 달랐다. 학교 측은 지난 17일 “서남표 KAIST총장이 추진한 징벌적 등록금 제도 완화 등 학생과 교수들이 요구한 개혁 조치를 대부분 개선했다”고 밝혔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3학년에 재학 중인 D씨는 “평점 기준이 예전보다 완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전면 영어강의 수업 등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평점 기준이 완화됐다고 해서 상대평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보니 학생들이 느끼는 부담감은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진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고민을 껴안아 줄 수 있는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3학년 학생은 “카이스트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저 시키는대로 열심히 공부해왔고 또 대학에 입학해서도 학습량이 워낙 많다보니 진로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졸업할 때가 되면 진로를 정하지 못해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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