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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상미 기자의 '요르단 사막레이스' 완주기> 뛰다 걷다…셋째날 물만 마셔도 구토가 올라왔다, 열사병이다
<상> ‘붉은 사막’ 와디럼에서의 출발
사하라 사막레이스 도전
값진 완주뒤 덮친 근육통
다시는 안뛰려 했지만
‘붉은 유혹’에 빠졌다
이번엔 ‘와디럼’이다

습도 2%, 찢어지는 입술
이곳은 첫날부터 달랐다
45도까지 올라간 셋째날
바위를 넘는 최악의 코스
10여명의 탈락자가 나왔다
넷째날 밤엔 모래폭풍이…

사막을 꿈꿨던 것은 스무 살, 대학교 때였다. 디스커버리 채널에 나온 막연하고 거대한 모래언덕의 풍경에 마음을 빼았겨 서른이 되는 해에는 꼭 저곳을 가겠다고 맘 먹었다. 당시 서른 살은 너무나 높은 벽이었고,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가려면 사막 마라톤 정도는 뛰어야 한다고 믿었다.

만 서른이 되던 2009년, 사하라 사막 250km를 횡단하는 사하라 레이스에 참가해 완주했다. 대한민국 기자 최초 완주라는 타이틀은 따냈지만 근 한 달은 끙끙 앓아 누웠었다. 근육통이 너무 오래 가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까지 받을 정도다 보니 정말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다시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애 낳는 고통도 잊혀진다고, 3년이 지나니 아팠던 기억보다는 아름다운 추억만 남아 있었다. 게다가 이번엔 사하라와 달리 핏빛 붉은 모래로 뒤덮인 요르단 와디럼이다. 여기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회가 열린다는 말에 다시 ‘팔랑귀’가 돼 어느새 참가신청서를 작성하고 말았다.

지난 12일부터 18일까지 열린 ‘2012 요르단 레이스’에 참가했다. 3년 동안 마라톤 풀코스도 뛰어 봤고, 하프코스는 2시간 이내에 완주할 정도로 체력도 다져 놨다. 이 정도면 완주 정도야 가뿐하겠거니 했는데, 역시 대자연은 그런 오만함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레이스 첫날 선수들이 캠프를 떠나 뛰어가고 있다. 와디럼의 중앙 계곡으로 가기 위한 초입이며,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레이스 출발 시각은 오전 7시로 아직 온도가 올라가기 전이라 선수들이 바쁘게 속도를 내고 있다.

▶물길을 품은 사막, 와디럼= “Vast, echoing and God-like(광대하고, 끝없이 울려퍼진다. 마치 신의 모습과도 같다).”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가 와디럼을 묘사한 말이다. 와디럼은 요르단 수도인 암만에서 남쪽으로 320km 떨어진 지점이다. 와디럼에서 ‘와디’는 겨울 우기에는 강이 흐르다가 건기에는 마른 계곡이나 땅이 돼 버리는 곳을 말한다. ‘럼’은 달(月)을 뜻하니 와디럼은 말하자면 ‘달의 계곡’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핏빛 붉은 모래가 지천인 가운데 물길은 그대로 말라붙어 이번 레이스의 자연 경로를 만들어줬다.

사막 밑바닥부터 1800m 안팎까지 솟아오른 암석들은 뛰는 내내 이곳이 지구인가 아니면 어느 다른 별에 와 있나 싶을 정도였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그리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그곳에 150여 레이서들의 발자국이 새겨졌다.

▶습도 2%, 숨만 쉬어도 찢어지는 입술= 원래 첫날은 수월하다. 레이서들의 적응을 위해 코스 자체를 어렵지 않게 만들어 놓는 데다 컷오프 시간도 여유있게 준다.

첫날 완주해야 하는 거리는 38.8㎞. 짧진 않지만 오르막이 많지 않고, 중간 중간 딱딱한 지형도 있는 수월한 코스였다. 컷오프 시간도 저녁 7시로 넉넉했다. 의욕은 앞섰지만 숨을 가다듬고 빠른 걸음으로만 걸었다. 배낭이 가장 무거울 때다. 이때 욕심을 부려서 속도를 냈다가는 어깨는 물론 무릎과 관절에 무리가 될 수 있다.

낮 최고 온도도 35도로 적당했다. 문제는 사하라 때도 경험하지 못한 건조함이었다. 숨만 쉬어도 금새 목이 바짝바짝 마른다. 입술에 침을 발랐다가는 순식간에 말라 찢어져 피가 나오기 일쑤였다. 캠프로 들어와 스태프에게 물어보니 이날 습도는 2%였다고 한다. 

첫날 레이스를 마치고 선수들이 캠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보이는 까만 텐트는 이곳 베두인족의 전통 주거 형태다.

▶10여명이 탈락했던 3일째= 배낭 무게는 좀 가벼워졌지만 온몸에 쌓인 피로가 여기저기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요르단에 도착하기 전부터 오른쪽 무릎이 말썽이었다. 훈련한다고 매주 뛴 마라톤이 오히려 역효과를 낸 것이다. 생각해 보니 미련했다. 오른쪽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걷다 보니 왼쪽 무릎에 하중이 과해졌다. 양쪽 무릎에 힘을 가하지 않으려니까 이젠 발목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악순환이다.

3일째부터 평지에서는 좀 뛰어 보려 했는데 뛰기는 커녕 컷오프 타임 내에 들어오는 것도 벅차게 됐다.

코스도, 날씨도 최악이었다. 초반부터 2개 구간이 모두 어려운 코스였고, 중간에 계곡 바위들을 뛰어 넘어야 했다. 무릎과 발목이 삐걱대기 시작하면서 관절에 충격이 갈 수밖에 없다. 오후 1시를 넘기자 온도계가 45도까지 올라갔다. 그렇게 건조한 데도 너무 덥다 보니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그래도 잘 간다 싶더니 갑자기 머리가 핑 돌기 시작했다. 물만 마셔도 속에서부터 역함이 올라오는 게 구토를 하러 뛰어가야 했다. 열사병 증상이다. 사하라 사막에서 섭씨 50도까지 올라가도 잘 견뎠는데, 여기에서 열사병이라니.

힘들다고 앉아 쉴 수 있는 그늘 하나 없는 곳이 사막이다. 중간 중간 숨을 고르면서 일단 체크포인트까지는 도착했다. 많은 선수들이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몇몇 선수들은 이미 지나치게 얼굴이 상기됐고, 눈의 초점이 다소 풀려 있었다. 결국 그 선수들은 스태프 차량에 실려가고 말았다.

마지막 구간이 10km가 넘는 가장 긴 코스다. 열사병 증상에 제대로 먹지 못했더니 허기가 몰려오고, 다리는 점점 힘이 풀렸다. 온갖 욕이 다 튀어나온다. 이런 짓을 또 하겠다고 다시 참가한 내 자신에게 화도 났다.

그렇게 간신히 컷오프 타임인 6시까지 들어왔다.

이날에만 10여명이 레이스를 포기했다. 한국인 참가자 이은화 씨는 컷오프 타임에 맞추기 위해 막판에 뛰어 들어와 체크 지점에서 바로 쓰러져 버렸다.

▶4일째, 지나치게 수월하다 했더니= 마지막 5~6일 롱데이를 제외하면 4일이 마지막 코스가 된다.

전날 더위로 걱정이 많았는데 오히려 수월했다. 온도는 비슷했지만 바람이 많이 불었다. 햇빛이 아무리 강해도 바람만 불어 준다면 그렇게 덥지 않은 곳이 또 사막이다.

그런데 온몸의 땀을 다 날려버리도록 시원했던 그 바람이 화근이었다. 처음엔 시원하다 싶던 바람이 천막을 흔들기 시작했다. 저녁 먹을 시간이 돼서는 같이 날아오는 모래 때문에 밥 반, 모래 반으로 겨우 넘겼다. 좀 심상찮다 싶어 고개를 들어 보니 저 멀리서부터 거대한 회색 바람 무더기가 몰려오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모래 폭풍이었다.

안상미 기자/hu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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