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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적자금’ 3분의 1은 ‘공짜자금’…회수율 지지부진
[헤럴드경제=최진성 기자]#. 지난 18일 서울 다동 예금보험공사(예보)에서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매각심사소위원회가 열렸다. 조속한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지지부진한 매각 절차를 점검하고 향후 매각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대우조선해양, 쌍용건설, 쌍용양회공업 등이 논의 대상에 올랐다. 오전 8시30분에 시작된 회의는 참석자들간 격론까지 오가면서 점심시간을 훌쩍 지나 마쳤다. 한 참석자는 “회의에 올라온 안건이 많은데다 모두 민감한 사안으로 논의할 내용이 많았다”면서 “유로존 재정위기 등 국내외 매각 여건을 점검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공적자금 회수에 빨간불이 켜졌다. 정부가 팔겠다고 내놓은 기업들을 사겠다고 나서는 주인이 없다. 급변하는 국내외 경제상황도 녹록지 않다. 현재 내놓은 정부 소유 기업 지분을 다 팔아도 56조원은 회수하지 못한다. 급할 때는 국민의 세금을 끌어쓰면서도 사후 관리는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공적자금 ‘3분의 1’ 못 받는다= 공적자금은 1997년 말 외환위기(IMF) 당시 부실 금융회사의 구조조정을 위해 투입된 정부재정자금이다. 기업과 금융회사의 도산을 막기 위해 예보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168조6000억원이 지원됐고 최근까지 103조원 가량 회수됐다.

회수율은 약 61%. 국민의 세금이 투입된지 15년이 지났지만 아직 65조원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회수 가치가 있는 정리대상 자산은 9조원 정도. 최종 회수율은 66%에 그칠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공적자금이 ‘회수율 100%’를 목표로 하진 않는다. 예보가 부실 금융회사에 ‘출연 또는 예금 대지급’ 방식으로 지원한 공적자금은 발생한 부실에 대한 손실 보전 목적으로 사용됐기 때문에 상당 부분 회수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나마 캠코를 통해 투입된 공적자금만 116%의 회수율을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24일 “공적자금은 실물 경제로 부실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투입된 유동성”이라면서 “공적자금을 지원하지 않았을 때 발생했을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회수된 금액보다 더 큰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당시 공적자금을 집행하지 않았다면 국민 경제에 더 큰 피해가 돌아갔을 것이란 얘기다.

부도 등으로 기업에 대출해준 돈을 회수하지 못해 금융회사가 문을 닫게 되면 우량 기업들도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돼 줄도산 위기에 처하고, 국민들은 예금해 놓은 돈을 모두 날리게 되는 등 대공황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공적자금의 일부 손실은 감수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해외 공적자금 회수율을 보면 우리나라의 회수율은 평균 수준이다. 미국은 1980년대 지역 주민의 주택금융을 지원해온 ‘저축대부조합’이 부동산 경기 침체로 대거 부실화되자 2269억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 61.2%(1388억달러)의 회수율을 기록했다. 일본은 회수율이 더 낮다. 1990년대 제2지방은행의 구조조정을 위해 46조8000억엔을 지원해 52.8%(24조7000억엔)만 거뒀다.

▶‘무사안일’한 공적자금 회수 작업=미회수될 공적자금 56조원은 올해 우리나라 총예산의 17%, 복지 예산의 60%에 달한다. 특히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라는 원칙에서 보면 공적자금을 관리ㆍ감독하는 정부의 역할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공적자금 회수는 정부가 보유한 금융회사 지분을 되팔거나 금융회사에서 매입한 부실 기업의 채권을 매각하는 방식 등으로 이뤄진다. 정부가 재원 마련을 위해 예보, 캠코 등에서 발행한 채권의 원리금 상환을 보증하고 있기 때문에 공적자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하면 그 부담은 국민에게 돌아온다. 미회수된 공적자금만큼 국민 세금이 충당된다는 얘기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정부 소유 지분 매각 등이 시장 여건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공적자금 회수율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거 5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돼 5000억원에 판 제일은행 매각건은 정부가 추진한 공적자금 회수사례 중 ‘최악의 딜’(거래)로 회자되고 있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정리대상 자산은 우리금융그룹(예보)과 대우조선해양, 교보생명, 대우일렉, 쌍용건설, 쌍용양회공업(이상 캠코) 등으로 9조원 정도다. 우리금융 지분만 매각돼도 6~7조원의 공적자금을 되찾을 수 있다. 캠코 보유 자산의 경우 부실채권정리기금 운용기한인 오는 11월까지 매각을 완료해야 현금으로 공적자금을 회수(11월 이후 현물 반환)할 수 있다.

정부의 계획대로 지분 매각 작업이 순조롭게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우리금융 지분 매각은 2010년과 2011년에 이어 세번째 도전을 하고 있고, 교보생명ㆍ대우일렉ㆍ쌍용양회공업은 재매각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 쌍용건설만 1차 예비인수자 2곳을 선정해 예비실사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는 “매각을 안한 게 아니라 못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령 2007~2008년 대우조선해양, 교보생명, 쌍용건설 등을 매물로 내놨지만 금융위기가 닥쳐 입찰참여자들 스스로 인수 의사를 철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패한 방법으로 재매각을 추진하는 등 정부의 회수 작업이 ‘무사안일’에 빠졌다고 비판한다. 특히 매각 실패를 시장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정부 스스로 시장 분석 능력에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매각 주관사 등을 통해 제대로 시장 분석을 했다면 기업 가치 하락은 물론 정부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반복된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우리금융 민영화가 금융당국의 ‘과욕’으로 평가절하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캠코 보유 지분 등 매각 시점을 못 박아놓고 추진하는 것도 문제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매각 시한을 정해놓은 상황에서 공적자금 회수를 극대화하겠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면서 “헐값 매각 논란을 피하기 위해선 좀 더 세밀한 시장 분석과 매각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ip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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