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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 없는 노숙자가 죽었을 때는 해부용으로?
[헤럴드경제= 박병국 기자] 얼마 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홀로 죽은 40대 남성인 A씨는 용산구청 직원에게 발견된 후 무연고자로 처리, 화장됐다.

나중에 이 남성이 자신의 동생이라는 것을 들은 누나 B씨. 미국에 살고 있는 B씨는 부랴부랴 서울로 왔고, 시신을 수습한 구청직원에게 “혼자 살던 우리 동생이 혹시 의대 해부 실습용으로 쓰인 건 아니죠?”라며 울었다.

B씨는 “가족을 찾지 못한 노숙인 등은 대학병원에 보내져 해부 실습용으로 쓰인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소문은 소문이 아니다. 현실이다. 연고자가 없는 시신들이 해부용으로 쓰이는 것은 법률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체해부및보존에관한법률 12조 1항에 따르면 시장 ㆍ군수 또는 구청장은 인수자가 없는 시체가 발생한 때에는 지체없이 그 시체의 부패방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의과대학의 장에게 이를 통지해야 하며, 의과대학의 장이 의학의 교육 또는 연구를 위해 시체의 교부를 요청한 때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해야 한다고 돼 있다.


연고자가 없는 시신이 해부 실습용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

서울 용산구청에 따르면 서울 동작동의 모 의과대학에서는 지난 1997년도부터 2008년까지 모두 8구의 무연고자 시신을 해부 실습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구청 등은 노숙자나, 홀로 사는 사람들이 사망할 경우 자체적으로 연고자 추적을 한 후 가족들이 나타나지 않으면 일간지나 지자체 홈페이지에서 한달 동안 공지를 한다. 이후에도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거나, 가족들이 인계 거부를 하면 시체 해부등의 관한 법률에 따라 한 개이상 의과대학에 통지를 한다.

의과대학의 시신인계 요청이 있으면 시신을 해부용으로 보내고 그렇지 않으면 장례절차를 거쳐 화장을 한 후 승화원 납골당에 10년동안 보관한다.

보건복지부는 이와 관련 법률적 근거가 있지만 최근 들어 자발적인 시신 기증자가 많아져 무연고 시신이 해부용으로 쓰이는 건 일년에 한 두 건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한 지방대학의 의대 관계자 역시 종종 지자체로부터 시신인계 통지가 오기는 하지만 무연고자의 시신은 상태가 좋지 않아 해부용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고려대 의대의 경우도 100% 자발적 시신 기증자로 해부실습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가족 없는 노숙인 등 무연고자의 시신이 최근까지 해부용으로 쓰였고, 근거 법령까지 마련돼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인권침해 등의 논란이 있다.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의 관계자는 “인격권이라는 측면에서 사전에 동의가 없는데 연고자가 없다는 이유로 의대에 해부용으로 쓰인다는 것은 위헌소지가 있을 수 있다”며 “개정이 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동현 홈리스 행동본부 활동가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인권이 신체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인데 시체해부는 인간의 존엄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고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며 “무연고 시신의 절대 다수는 가난한 이들의 시신이라는 점에서 이들을 해부할수 있다고 규정한 법률은 즉각적으로 개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c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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