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동안 관객과 열띤 토론…가수 ‘비’를 직접 언급하기도
-샌델 “경제학은 윤리에서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헤럴드경제=박수진 기자]1일 오후 7시 서울 신촌동 연세대 노천극장. ‘정의란 무엇인가’로 잘 알려진 마이클샌델<사진> 교수가 1만2000여명의 관중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이 명문대 총장이라고 해보자. 누군가 이런 제안을 해왔다. 입학정원이 90%는 학업능력에 따라 선발하고 나머지 10%는 학업성적은 뛰어나진 않지만 학교에 큰 돈을 기부할 수 있는 학생들을 뽑자는 내용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열띤 토론이 시작됐다. 고려대 재학생이라고 밝힌 한 여학생은 “대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대학의 선발 기준이 부모가 얼마나 부자인지에 근거해서는 안된다. 대학의 설립목적은 이윤창출이 아닌 교육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재학생이라고 밝힌 한 남학생이 손을 들었다. “기부입학을 허용하면 대학이 학생들에게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 교육의 기본 환경이 더 좋아질 수 있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그들의 토론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샌델 교수는 “서로 이야기를 해봐라. 상대를 설득시켜보자”고 더욱 적극적인 토론을 이끌었다.
여학생은 “물론 대학의 재원에 대한 접근성도 확보돼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교육을 제공한다는 대학의 기본적 목적보다 앞서선 안되다”고 받아쳤다. 그러자 남학생은 “10%는 전체 학생을 봤을 때 큰 비중이 아니다”고 말했고 여학생은 “10%는 되고 11%, 20%는 안되는 이유는 뭐냐”고 반박했다.
샌델 교수가 말을 보탰다. “10%가 크지 않다는 것은 어떤 원칙에 기반을 두고 말을 하는 것인가. 만약에 기부입학 비율이 50%라면 당신도 역시 기부입학제도에 반대를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남학생이 대답을 주저하며 “미안하다. 내 논리가 방향을 잃었다”며 머쓱해했다. 샌델 교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당신의 토론은 정말 훌륭했다”고 찬사했다. 관중석에선 박수와 환호성이 이어졌다.
신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발표하며 방한한 샌델 교수의 이날 강연은 마치 ‘토론의 축제’와 같았다. 1만2000여명의 관객들은 2시간여 진행된 강연 동안 그 축제에 빠져들었다. 샌델 교수는 기부입학, 암표 거래, 현금보상제도, 연예인의 군 복무 면제 등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소재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질문을 통해 우리 사회 속에서 ‘비시장적 가치’와 ‘시장적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에 대한 토론을 이끌어냈다.
샌델 교수는 기부입학과 관련한 토론에서 “이 문제에선 공정성의 논리와 부패의 논리가 제기됐다. 기부입학의 문제는 과연 입학정원이라는 재화를 매매했을 때 (대학 교육의)기본적인 목적을 부패시키는지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양한 이슈의 토론을 이어가며 궁극적으로 “경제학은 윤리에서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샌델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과연 어떤 경우에 경제적 논리가 중요한 가치를 밀어내고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시민사회, 교육이라는 재화 등이 예가 된다. 금전적인 인센티브를 도입함으로써 주요한 가치들이 변질되고 잠식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필요하다”며 “모든 것을 거래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 사이를 점점 멀어지게 한다”고 말했다.
샌델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공정사회’라는 화두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최근 한국을 방문하며 공정사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물론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기회를 넓혀가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날 강연에 참석한 어유경(27ㆍ여)씨는 “인상 깊은 강의였다. 강의가 이렇게 상호소통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강연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13살 아들과 함께 참석한 윤미숙(42ㆍ여)씨는 “훌륭한 석학의 강의가 아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직접 표를 예매해서 오게 됐다. 우리 사회에서도 ‘정의’와 ‘도덕’이 점차 큰 화두가 되고 있는데 오늘 강의가 좋은 길잡이가 되준 것 같다”고 말했다.
sjp10@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