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서상범기자] 소외받는 사람들,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해 신학도를 꿈꿨다. 한신대 신학과를 81년 졸업하고 기독교 장로회 여성신도회 활동을 하며 성매매여성들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특히 의정부 일대의 미군기지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이 눈에 밟혔다.
어떻게 그들을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85년 말 아예 의정부 미군기지 근처로 이사를 가서 그들과 함께 생활을 했다.
작은 방 한 칸을 얻어 두레방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7년여동안 그들과 함께 동거동락 했다.
그녀의 삶의 한 켠이다.
그녀는 바로 유복임(56) 전 다시함께센터 소장이다. 소위 우리나라 기지촌 여성들의 왕언니라 불린다.
1985년 말부터 1992년 5월까지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기지촌인 의정부ㆍ동두천 지역의 성매매 피해여성 지원기관인 ‘두레방’에서 상담, 교육 프로그램, 공동식사, 자활 프로그램 운영 등의 활동을 했다.
2009년부터 2012년 5월까지는 성매매피해자 자활을 위한 ‘다시함께센터’의 센터장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유 전 소장은 “당시 80년대 말만해도 성매매여성들 중에서도 기지촌 여성들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했다”며 “이 여성들의 편에 서서 목소리를 함께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활동계기를 밝혔다.
그는 의정부의 방한칸에서 숙식을 하며 여성들의 생활에 대한 상담은 물론 여성들에 대한 영어교육도 함께 했다. 미군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하던 여성들 중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여성들이 전무한 상태에서 기본적 의사소통이 되지않아 일상생활은 물론 미군에 의한 학대도 비일비재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유 전 소장은 “미군과 동거를 하던 여성들도 많았다”며 “이들이 미군들과 동등하게 생활하기 위해서라도 영어는 필수항목이었다”고 말했다.
처음 그가 의정부에서 활동을 할 때만 해도 기지촌 여성들은 경계심을 숨기지 않았다.
“과연 오래갈까? 생색만 내고 이 곳을 떠나는 것은 아닐까?”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고 유 전 소장은 회고했다.
그러나 밤 낮 없이 여성들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유 전 소장을 보며 기지촌 여성들은 마음의 문을 열었다.
당시 30대 초반이던 유 전 소장을 여성들은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언니’라고 부르며 따랐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여성을 묻자 유 소장은 당시 29세이던 A씨를 떠올렸다.
“미군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상담을 하러 왔더라구요. 어릴 때 아버지에게서 학대를 받았던 경험으로 임신상태에서 힘들어했던 그녀와 2일동안 밤을 새며 이야기를 했어요. 상담이 끝나고 누구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려했었다는 그녀를 보며 너무 가슴이 아픔과 동시에 내가 이일을 하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유 전 소장은 말했다.
한편 유 전 소장은 30여년의 성매매피해여성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5일부터 열리는 여성가족부 주최 ‘2012 국제성매매방지 심포지움’에서 성매매 피해자 지원에 대한 발표를 할 예정이다.
유 전 소장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인신매매 방지법이 통과되지 않고 있다”며 “성매매 피해여성들을 막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인신매매 방지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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