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학대에 시달리는 이주여성
얼굴 딱한번 보고 시집온후아이 둘낳았지만 폭력 여전
견디다 못해 맨몸으로 도망
여권 빼앗겨 불법체류자 전락
쉼터 부족 마땅히 갈곳도 없어
남편은 술만 먹으면 이유 없이 때렸다. 시도 때도 없이 성관계를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면 폭력이 이어졌다. 조그마한 여관을 운영하는 시부모는 따로 종업원을 들이지 않고 가정부처럼 부려먹었다. 아이 둘을 낳았지만 나아지는 건 없었다.
베트남 여성 A씨의 한국 결혼생활은 이렇게 지옥 같았다. 단 하루 만난 한국 남자와 ‘결혼’을 하면서 언어ㆍ문화 등 극복해야 할 것이 많을 것은 예상했다. 하지만 A씨를 견딜 수 없게 한 건 남편과 시부모의 계속되는 폭력과 학대였다. 성노예, 가정부와 다름없는 삶을 살던 A씨는 결국 가출해 결혼 이주 여성 쉼터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2010년 6월 말 기준, 결혼 이민자는 67개국에서 온 18만1671명이고, 이 중 여성이 16만1999명에 달한다. 총 결혼 건수 대비 국제결혼비율은 1990년 4710명(1.2%)에서 2009년 3만3300명(10%)으로 증가, 한국에서 결혼한 10쌍 중 1쌍이 국제결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결혼 이주 여성의 출신국가는 베트남이 53.1%로 가장 많았으며, 중국인 16.3%, 한국계 중국인 14.7%, 일본 4.2%, 필리핀 3.9%의 순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국제결혼 가정의 70%가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여성부가 조사한 가정폭력 실태에서도 이는 여실히 드러난다. 국제결혼 이주 여성의 부부 폭력 발생률은 69.1%에 이르고 있다. 결혼 이주 여성이 겪은 폭력 피해 유형으로는 정서적 폭력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A씨와 같이 가정폭력과 학대로 고통받는 자가 21.5%에 달했고, 경제적 폭력 15.3%, 신체적 폭력 13.4%, 성학대 5.2% 순으로 조사됐다.
가정폭력으로 고통받는 결혼 이주 여성들의 인권이 자리할 곳은 쉼터뿐이다.
하지만 쉼터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의 결혼 이주 여성들이 여권을 남편이나 시부모에게 빼앗긴 채 집을 나오면서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전락하는 것.
결혼 이주 여성 쉼터의 한 관계자 B씨는 “한국에서의 체류 기간을 연장하려면 ‘여권’이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 결혼 이주 여성들이 여권 없이 몸만 빠져나오는 경우가 많아 어려움을 겪는다”고 밝혔다.
때문에 쉼터 측에서는 입소한 여성들의 체류 연장을 위해 출입국관리소나 대사관에 쫓아다니기 바쁘다. 여권을 만들어주는 데에만 130만원이 소요되기도 한다. 대안으로 여행자 증명서 하나를 발급받는 데에도 30만~40만원의 비용이 든다. 이렇게 해서 쉼터 측에서 신분을 보증해도 체류 연장 기간은 3개월에 불과하다.
B씨는 “쉼터의 예산을 체류 연장에 반복적으로 써야 된다. 결혼 이주 여성들은 한국어를 배우거나 자활기술을 습득하는 것보다 ‘체류’ 자체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나마 A씨처럼 쉼터에 입소한 경우는 다행이다. 전국 18개 쉼터(국비 지원)의 수용률은 100%를 초과한 상태로, 폭력과 학대를 피해 집을 나왔다가도 갈 곳이 없어 다시 귀가 조치되는 경우도 있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국비 지원이 되는 순수 쉼터 18곳(정원 225명) 외에 사회단체들이 운영하는 시설이 있지만 폭력과 학대에 못 이겨 가정을 버리고 뛰쳐나온 결혼 이주 여성을 수용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다문화 가정들이 주로 농촌지역에 많은데, 쉼터는 거점도시 위주로 존재한다”며 “향후 다문화 가정이 늘어날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쉼터를 전국 곳곳에 더 늘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황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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