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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가 베트남 말쓰면 시부모가 폭행”
다문화 가정의 행복 만들기 <中>2세들에 대물림 되는 고통
“무조건 한국말만 해라” 강요
“무서워 말보다 몸으로 의사표시
“발음 이상하다” 친구들 놀림
“산만하고 폭력적으로 변해



“시어머니는 아이가 베트남어를 조금이라도 쓰면 때렸어요. 베트남어 쓰지 말고 한국말 하라고….”

8년 전 한국남자와 결혼을 하면서 한국생활을 시작한 베트남 여성 A(29) 씨. 남편과 20살 이상 차이가 났기 때문에 시어머니 성화에 바로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한국말에 서툰 A 씨가 베트남어를 쓸 때마다 시어머니와 남편의 폭언과 폭력이 이어진 것. 아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말을 배우기 시작한 A 씨의 아들이 베트남어를 내뱉기라도 하면 시어머니는 한국말로 하라며 아이를 때리고 혼냈다. 결국 A 씨는 점점 말문을 닫게 됐고 아이에게 하는 말이라곤 “밥 먹어” “이거 해” “그거 하지마” 등의 간단한 지시문장들뿐이었다.

현재 아이는 8살이나 됐지만, 한국어도 베트남어도 어눌한 상태다. 자신의 욕구를 말보다는 몸으로 표현하다보니 폭력적이고 산만하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학교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건 당연지사다. A 씨는 그런 아들을 볼 때마다 속상하다. 자신이 받은 차별과 학대가 대물림되는 것 같아서다. 이 같은 경험은 비단 A 씨와 그 아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서울시 교육청에 따르면 유치원,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다문화가정 학생은 2010년 5222명에서 2011년 6837명으로 30% 이상 가파르게 증가했다. 또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다문화가정 자녀 18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한 학생이 37%에 달했다. 여기에는 ‘발음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놀림을 당한다’는 사유가 41.9%나 차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늘고 있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학교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데 ‘언어문제’가 큰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결혼이주여성디딤터 권오희 원장은 “이중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인재(人材)로 성장할 수 있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언어발달 시기를 놓쳐 학습 부진아로 전락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권 원장은 “다문화가정, 특히 동남아권 결혼이주여성들의 모국어 사용을 금기시하고 한국어 사용만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반드시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도적 뒷받침이 아직 걸음마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다문화가정 학생들을 위한 지원책으로 ‘이중언어강사’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서울시 교육청은 “현재 서울의 경우 대략 80개 학교에 100명 정도 이중언어강사가 배치돼 있다”고 밝혀 다문화가정 학생 수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 3월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이중언어강사를 2015년까지 1200명으로 늘리겠다”고 약속했지만 다문화가정 학생의 빠른 증가추세에 부합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때문에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한 학교에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 등 다양한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있을 때, 각 언어에 해당하는 이중언어강사를 모두 배치할 수 없다면 생색내기용 제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황유진 기자>
/hyjgo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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