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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픔딛고 바리스타 공부…“커피전문점 차리는게 꿈”
다문화 가정의 행복 만들기 <下> 보파 씨의 작은 소망-끝
21살때 한국으로 시집와
딸 만 낳았다고 학대·폭행
주변도움으로 쉼터서 새생활
아이생각에 오늘도 열공중



“선생님, 커피에서 고구마 향이 나요. 신기해요!”

지난 5일, 서울의 한 결혼이주여성디딤터에서는 바리스타(즉석에서 커피를 전문적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 수업이 한창이었다. 10명 내외의 결혼이주여성들이 옹기종기 모여 커피 품평회라도 하듯 맛과 향을 음미하느라 바쁘다. 그 중에서도 캄보디아 여성 보파(가명ㆍ27) 씨는 누구보다 수업에 적극적이다.

결혼이주여성들의 바리스타 교육을 맡고있는 강사 김주애(45) 씨가 “이르가차페(Yirga-cheffe)라는 원두에요. 풍미가 부드럽고 고구마 맛이 나지요.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그걸 알아챘다니 잘했어요” 라며 칭찬을 하자 보파 씨의 얼굴엔 웃음이 번졌다. 


작은 커피 가게를 차리고 두 딸과 행복하게 사는 꿈을 갖고 있는 보파 씨. 지금은 디딤터에서 생활하며 ‘웃음’을 되찾았지만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남편의 폭력으로 눈물 마를 날 없는 하루하루를 견뎌야 했다.

21살의 나이에 한국 남자와 결혼하고 두 딸을 낳았지만 남편은 “왜 딸만 낳는 거냐”며 술만 먹으면 보파 씨를 때렸다. 심지어 남편이 휘두른 낫에 다리를 크게 다치기도 했다.

보파 씨는 “한동안 음식을 할 수 없었어요. 칼만 보면 무서웠거든요”라며 “다리에 피가 철철 나도 병원에 보내 주지 않아서 연고만 발랐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이어 “나만 때렸다면 참았겠지만 어린 딸까지 피가 나도록 때렸기 때문에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경찰에 신고를 안 해본 건 아니다. 하지만 말이 서툴러 본인이 입은 폭력 피해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던 탓에 경찰은 보파 씨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가까스로 남편 친구의 도움을 받아 폭력피해 결혼이주여성들이 머무는 ‘쉼터’로 거처를 옮겼고, 그제서야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쉼터에서 6개월 동안 정신과 상담치료를 받으며 겨우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보파 씨는 “디딤터에 와서 기술도 배우고 선생님들이 도와주시니까 자신감이 생기고 희망도 갖게 됐다”며 미소를 지었다. 한국생활 5년 만에 찾은 행복이다. 한때는 ‘한국 사람들이 밉다’는 생각마저 들어 고향 캄보디아로 돌아갈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두 딸의 미래를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

“저는 캄보디아에서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학교를 12학년 중 5학년까지만 다닐 수 있었어요. 하지만 우리 딸들은 좋은 환경에서 공부시키고 싶기 때문에 제가 한국어도 열심히 배우고 이렇게 기술도 익혀서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어요”

딸 얘기를 하는 보파 씨의 큰 두 눈망울에는 절실함이 가득했다. 두 딸을 위해 커피와 행복한 씨름을 하고 있는 보파 씨는 바리스타 3ㆍ4급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오늘도 커피 한 잔에 자신을 꿈을 담아본다.

디딤터에 머물고 있는 대부분의 결혼이주여성들은 보파 씨와 같은 심정이다.

한 관계자는 “디딤터에 최대 2년 머물 수 있고, 이곳을 나간 뒤에는 혼자 힘으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다들 고3 수험생처럼 열심히 임한다”고 설명했다.

<황유진 기자>
/hyjgo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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