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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 고졸 실력 이 정도일 줄이야…인사담당자들 “생각 바뀌었다”
대기업 채용 슈퍼고졸 어떻길래…그들의 스펙·스토리는
‘긴 가방끈=높은 전문성’은 옛말
차별화되는 다양한 자격증이 큰 무기
20%는 당장 실전투입 가능
열정·성실로 중무장 ‘한국산업 희망’
석사급 연구원 자리 꿰차기도



“고졸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실력이 이 정도일 줄 몰랐다. 대졸자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다. 다시 보게 됐다.”

고졸 채용을 진행한 여러 기업 인사담당자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가방 끈이 길어야만 전문성이 높을 것이란 선입견과 달리 실업계,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에서 익힌 경험과 기술로 바로 실전에 투입해도 좋을 만큼 실력을 갖춘 고졸 입사자가 많이 눈에 띄었다. 열정과 성실로 만들어 온 삶의 스토리 역시 그들이 ‘한국 산업의 희망’이라는 생각을 하도록 하는 데 충분했다.

올해 초 CJ E&M 고졸 공채로 입사한 김수진(가명) 씨. 그는 4년제 대학을 다니다가 오래 전부터 꿈꿔 왔던 공연기획자가 되기 위해 과감히 자퇴서를 냈다. 대학 중퇴 후 처음 면접을 본 공연기획사에선 “아무리 현장 일이지만 전문대라도 나와야 한다”며 면접조차 거절했다.

“퇴짜를 맞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본 회사원들이 부러워 왈칵 눈물이 났다”는 김 씨는 “일생의 꿈인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작은 역할이라도 해내면 언젠가 나를 알아볼 곳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3년 동안 관련 아르바이트를 섭렵했다. 열심히 살아온 김 씨에게 CJ E&M 입사는 어쩌면 당연한 보상이다.
수원하이텍고등학교 학생들이 실습실에서 실무 경험을 익히고 있다. 3년 동안 실전경험을 쌓은 이들의 현장능력은 대학 관련학과 졸업생의 그것을 뛰어넘는다는 게 기업체 관계자들의 얘기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개발직으로 뽑힌 김연식(가명) 씨는 공업고등학교 재학 시절 우수한 실력으로 학교 대표에 뽑혀 일본 연수를 다녀왔다. “타지 생활이 서럽고 힘들었지만 암투병으로 고생하시면서도 의연하셨던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견뎌냈다”고 지난날을 술회했다.

원기찬 삼성 부사장은 “소프트웨어 직군은 처음 고졸을 뽑았지만 당장 소프트웨어 개발 일을 맡겨도 대졸 이상으로 잘할 것 같은 학생들이 20% 됐다”며 고졸 출신의 실력을 인정했다.

남들과 차별화되는 자격증은 고졸 취업자의 희망이다. IT 벤처기업 다산네트웍스에 채용된 정인우(가명) 씨는 세계 유명 네트워크 기업 시스코(CISCO)에서 인증하는 CCNA 자격증을 보유해 눈길을 끈다. 이 자격증은 소호(SOHO) 시장에 필요한 네트워킹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삼광유리는 최근 한 방송국과 손잡고 진행한 고졸 채용 프로그램에서 글라스락 등 대표 브랜드 개발을 맡을 고졸 직원을 4명 채용했다. “보통 연구개발직이라 하면 석사 이상 연구원을 생각하지만 이 학생들은 컴퓨터 응용 선반기능사 등 관련된 자격증을 갖고 있고, 스스로의 아이디어를 오토캐드를 통해 입체적인 결과물로 능숙하게 만들어 내 채용했다”고 인사담당자는 밝혔다.
고졸 취업자들의 스펙과 실무능력이 예상 밖으로 놀랍다. 덕분에 졸업을 한참 남겨 둔 지금, 기업체로 진로가 이미 확정된 학생들이 적지 않다. 수원하이텍고등학교 교무실에 게시되어 있는 개별학생 진로표시판에도 공란이 거의없다.

대를 이어 한 분야에 전문가가 돼 취업까지 이른 경우도 있다. 이남식(가명) 씨는 평생 조경일을 해 온 아버지의 영향으로 평생을 식물과 농업에 둘러싸여 살아왔다. 가업을 이을 생각으로 고등학교 조경학과에 진학했고, 최근 삼성 에버랜드 조경전문직으로 채용됐다.

많은 수의 고졸 취업자들은 어려운 가정 환경 때문에 남들보다 일찍 취업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이 더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직업인으로 변모하게 했다.

삼성화재에 채용된 여인희(가명) 씨는 고등학생 2학년 때 부친의 사업실패로 수업료가 없어 학교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10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계속 했지만 치솟는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수 없어 이번 삼성 고졸 공채에 도전했다. 여 씨는 “회사에서 인정받는 인재가 된 후 다시 못다 한 학업을 계속 하고 싶다”고 말했다.

독특한 이력을 통해 회사에 도움을 주는 고졸 입사자도 있다. 각각 원예조경학과와 애완동물학과를 나온 이혜진(19) 양과 강인진(19) 군은 전공과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IT 제조업체인 바른전자에 실습생으로 입사했다.

임세종 (주)바른전자 대표는 “다양한 요소가 함께 존재해야 회사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전공에 관계없이 고졸 인재를 채용했다”고 밝혔다. 강 군은 “동물들을 대하는 따뜻한 자세를 바탕으로 회사의 밝은 분위기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원호연 기자/>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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