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남동·안산 시흥 스마트허브를 가보니…
경제위기 조선산업 직격탄기계부품·기자재업체 등 … 평균 매출 4%가량 감소
中 값싼 자재유입도 큰몫
건설업계 장기불황여파
중견가구업체도 고사위기
일부선 폐업설 등 무성
스마트폰 호황·FTA 효과…전자·車부품은 그나마 다행
“야근이나 잔업하는 곳이 없는지 밤이면 깜깜합니다. 다니는 차도 갈수록 드물어요.”
지난 19일 오후 경기 안산ㆍ시흥 스마트허브(옛 반월ㆍ시화산단)에서 만난 A사 대표. 선박용 전선 제조용 PVC컴파운드를 제조하는 이 회사는 5월 중순부터 거의 일감이 끊겼다며 한숨을 쉬었다. 국내 조선사의 선박 수주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보통 1~2월 비수기가 지나고 3월부터 7월 초까지 집중적으로 주문을 받아 매출을 올려야 여름철 비수기를 버티는데 작년 대비 작업량이 20% 이상 줄었다.
A업체 측은 “지난달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금요일에 기계를 아예 꺼버렸다. 그나마 우리 회사는 신규 설비투자를 하지 않아서 부채는 없어 다행”이라고 했다. 1~2년 전 금융위기가 끝났다고 설비투자를 늘린 업체는 일감은 없는데 이자까지 갚아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전했다.
조선산업이 경제위기 타격을 받으면서 관련업계도 고통스럽다. 우선 철강업체나 기계부품, 조선기자재업체의 평균 매출이 4%가량 감소했다. 중국의 값싼 자재 유입도 한몫했다.
경기 안산의 반월스마트허브에 위치한 선박용 전선 피복업체. 전방산업 불황으로 공장은 활기를 잃었으며, 생산된 제품이 창고에 쌓여 있다. 원호연 기자/why37@heraldcorp.com |
원자재값 상승도 문제다. 난연재로 쓰이는 희토류의 일종인 삼산화안티몬이 중국의 자원 무기화 정책으로 가격이 7배나 뛰었다. 조만간 오를 것으로 보이는 산업용 전기료도 중소기업에는 큰 걱정거리다.
인쇄회로기판(PCB) 등 전기전자부품, 자동차부품, 기계, 석유화학, 철강, 섬유, 피혁업체 등 1만5000여개의 크고 작은 업체가 조업하는 안산ㆍ시흥단지는 인천 남동인더스파크와 더불어 수도권 제조업의 기반이다.
불황이 깊어지면서 두드러진 현상은 양극화. 1, 2차 협력업체가 대부분이어서 납품 대기업의 업황에 따라 이곳 중소기업도 울고 웃는다.
한국산업단지공단 경인지역본부는 “재정위기로 어려운 유럽쪽 수출 대기업에 납품하던 기업은 힘든 반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효과로 수출이 늘어나는 기업도 많다”고 전했다.
건설업계의 장기불황 역시 가구, 전선, 철강 등 연관산업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인천 남동단지에 몰려 있는 중견 가구업체 상당수가 매출이 절반 이상 줄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구조조정이 이미 진행돼 회사 규모도 3분의 1에서 절반 정도로 줄여 연명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 18일 남동단지에서 만난 가구업체 B사 임원은 “현재 1개 사는 부도가 이미 났고, 조만간 3~4개 업체가 문을 닫을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다”며 “값싼 중국산 가구를 수입하는 업체가 늘어나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 가죽업계도 한ㆍ유럽(EU) FTA 이후 원단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관련 투자를 늘렸으나 적잖은 차질이 생겼다.
반면 전자, 자동차부품 업계는 상황이 좋은 편이다. 스마트폰 호황, FTA에 따른 수출증대 효과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
자동차 스마트키를 생산하는 C사 대표는 “한ㆍ미 FTA로 자동차와 차부품에 대한 관세가 철폐되면서 매출이 5%가량 늘었다. 국산차 수출이 늘어나 우리 회사도 성장세를 유지할 전망”이라며 “문제라면 기술인력을 구하기 쉽지 않아 글로벌 부품업체와 경쟁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품질 균일화와 인건비 절약을 위해 올해 자동화설비 투자를 한 게 주효했다. PCB업종의 경우 품목에 따라 상황이 조금씩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나쁘지는 않은 편. 삼성전자에 스마트폰ㆍ태블릿PC용 부품을 납품하는 기업은 공장 증설을 추진할 정도다. 반면 컴퓨터 등 다른 분야에 납품하는 PCB업체는 현상유지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통계에 따르면 반월단지와 시화단지 4월 생산액은 전월보다 각각 4.7, 2.0% 줄어든 3조3100억원, 3조207억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남동단지 역시 전월보다 3.6% 감소한 1조7909억원이었다. 특히 기계, 철강, 전기 등의 업종에서 생산 감소세가 두드러지는 추세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길게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점. 산업단지공단 경기지역본부 시화지사 이화종 지사장은 “유럽과 중국의 경기침체가 국내 산업활동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아직 심화하지는 않았지만 기업은 내수와 수출이 동반 하락하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적극적인 금융지원과 함께 대기업의 동반성장 노력이 강화돼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이정동 서울대(산업공학) 교수는 “대기업이 협력업체에 투자하는 기업벤처캐피털(Corporate venture capital)을 적극적으로 늘려 협력업체가 불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재무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주문했다.
<인천ㆍ안산ㆍ시흥(경기)=조문술ㆍ원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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