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급랭을 막으려면 내수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방법은 부동산에 발목잡힌 계층의 숨통을 터주는 길 이외 대안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 지난 21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각 부처 장관과 민간 경제단체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경제위기 극복 ‘끝장토론’의 결과물이다.
▶현금 흐름 개선이 유일한 대안= 급격한 경기침체가 눈에 보이는 데도 정부의 정책대응을 제약한 건 가계부채와 부동산이었다. 올 한해 수출은 어차피 안 좋은 게 뻔한 상황에서 내수가 성장에 기여해야 하는데, 내수 활력의 핵심이 돼야 할 계층의 손발이 묶여 있으니 내수가 좋아질 리가 없었다. 이들은 대부분 주택 1~2채를 갖고 있으나 주택가격 하락과 거래 실종으로 가계의 현금흐름이 악화되면서 지갑을 열지 못하고 있는 ‘하우스푸어’다.
정부는 이날 10시간에 가까운 마라톤 회의를 통해 DTI의 기본 틀은 유지하되 주택거래와 소비촉진을 위해 실수요자의 특성에 맞춰 불합리한 부분을 개선하기로 했다. 고액자산가와 은퇴자의 재산에 따른 DTI 차등 적용, 무주택자 미래소득 증가분 인정, 대출 승계에 따른 DTI 예외 적용 등이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번 조치가 DTI 규제 ‘완화’가 아니라 ‘보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23일 “대출자의 상환능력에 비해 더 많이 대출해 주겠다는 게 아니라 대출자의 특성에 맞춰 유연성을 두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 동안 DTI가 너무 경직되게 운영됐다는 지적이 많아 비합리적인 부분을 손질하는 정도로 이해하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 조치가 마치 정부가 마치 경기부양을 위해 빚을 내어 소비를 부추기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DTI 보완, 소득4분위 계층이 타깃=정부가 주 타깃으로 삼은 계층은 소득을 5구간으로 나눠 분류한 계층(소득5분위) 중 소득 4분위(소득 상위 60~80%)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경제가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저소득층(소득 1~2분위)이 전세금과 생계형 창업자금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소득 4분위는 하우스푸어에 해당하는 계층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특히 이들은 경제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높은 소비여력을 바탕으로 내수부양의 핵심이 돼야 하지만, 주택거래 실종과 가격 하락으로 가계 현금흐름이 악화되면서 되레 지갑을 닫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투자증권 나정오 연구원은 23일 ‘대한민국 가계부채 분석: 문제는 계층간 차별화’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주택 거래가 없으면 필요할 때 주택을 현금화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로 주택가격이 추가 하락하고 4분위 계층은 더욱 지출을 줄이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DTI 보완 또는 완화를 통해 이들의 퇴로를 열어줘야 내수부양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이날 DTI 보완과 관련해 “아직 정해진 게 없다”며 “자산은 많은데 대출을 받지 못하는 상황 등 불합리한 부분이 있는지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위와 국토해양부 실무 관계자들은 “오늘(23일)부터 관련부처 회의를 거쳐 DTI 보완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금융업계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해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DTI(총부채상환비율)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연간 상환해야 하는 금액을 연 소득의 일정 비율로 제한한 것. 만약 총부채상환비율이 50%이고, 연간 소득이 5000만원이라면 총부채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은 2500만원(5000만원×0.5)을 초과하지 않도록 대출규모가 제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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