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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 신창훈> ‘숫자의 도그마’에 빠진 이명박 정부
이명박 정부는 지난 4년간 감세정책을 추진했다. 감세규모가 63조원에 이른다. 1년을 더하면 8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나라 곳간에 들어올 돈을 줄여놨는데, 앞으로 쓸 돈도 줄이겠다는 것이다.


#오랜 외국 생활 끝에 한국에 교수 자리를 잡아 돌아온 대학 동창을 얼마 전 만났다.

이 친구, 좀 과격(?)했다. 대학 교육의 현실을 얘기하던 중 “이명박 정부가 대학을 망쳤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말의 요지는 이랬다.

“현재 정부의 대학 평가 기준은 취업률 수치뿐이다. 먼저 목표치를 정해놓고 끼워맞추기를 하고 있다. 학과의 특성에 맞는 교육이나 취업지도를 하면 무능한 선생이 된다. 비정규직이 됐든, 뭐가 됐든 취업률만 맞추면 된다는 식이다. 이게 무슨 대학교육인가.”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던 지난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0%였다. 이 수치는 한국은행 물가관리 목표치의 최상단이다. 당시 전문가들은 4% 이내 물가 상승률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해 11월부터 개편된 물가지수를 적용하자 정확히 4.0%가 나왔다. 물가 목표 수치를 맞추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비등했다.

최근 소비자물가는 7~8월 두 달 연속 1%대 초중반에 머물렀다. 체감물가와는 괴리가 너무 크다. 정부 관료들은 현재 경기상황이 디플레이션(성장률 감소에 따른 물가 하락) 우려도 있고,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속 성장률 하락) 우려도 있는 상태라고 설명한다. ‘공식 지표’와 ‘체감 지표’가 다르다 보니 현실 인식 자체가 헷갈리는 것이다.

#숫자에 얽힌 또 하나의 예다. 정부는 균형재정 달성 목표시점을 2013년으로 정했다. 원래는 2014년이었는데, 1년 앞당기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지난 5일에도 국회에 그렇게 보고했다.

재정건전성은 국가 살림살이를 관리하는 기획재정부의 지상과제다. 글로벌 재정위기의 반면교사라고 치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그런데 경제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먼저 균형재정 달성 목표를 제시하다 보니 스텝이 많이 꼬였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4년간 감세정책을 추진했다. 감세규모가 63조원에 이른다. 1년을 더하면 8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나라 곳간에 들어올 돈을 줄여놨는데, 앞으로 쓸 돈도 줄이겠다는 것이다.

황성현 인천대 교수는 최근 국회에서 열린 ‘향후 경제ㆍ재정운용 방향’ 공청회에서 “재정지출 억제가 낭비되는 지출을 줄인 결과가 아니라 국가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포기했기 때문이라면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성과를 측정할 때 수치만큼 좋은 건 없다. 어떤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일 때 제시한 숫자의 유용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숫자가 그 속에 담긴 내용을 충분히 설명해주진 않는다. ‘숫자의 권위’를 들어 제시한 사실이 반드시 진실일 순 없는 것이다.

이제 국민들은 체감하지 못하는 숫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특히 수치에 얽매인 정책목표가 잘못된 결과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재앙이다. 물가 상승률은 1%대라는데 장 보기가 겁나는 현실, 실업률이 완전고용에 가까운 3%대라는데 주위에 노는 사람은 넘쳐나는 이 불편한 진실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숫자의 도그마’에 빠져 힘든 현실을 호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chuns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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