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유튜브에 비교 동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두 종류의 단말기를 책상에 올려놓고 동영상을 띄운 뒤 망치로 때렸는데 한 단말기는 치는 순간 산산조각이 났다. 다른 단말기는 아무리 망치로 두드려도 멀쩡하게 동영상이 재생됐다. 망치의 충격을 거뜬히 견뎌낸 단말기는 플렉시블 능동형 유기발광 다이오드(AMOLED)를 탑재한 제품이었다. 이 유튜브 동영상은 플렉시블 디스플레이가 깨지지 않는다는 장점을 단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자유자재로 구부렸다가 펼 수 있다고 해서 부르는 플렉시블 스마트폰. 10년 전 개봉한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주인공인 탐 크루즈가 손에 쥐고 있던 신문을 접자 컴퓨터로 변하는 장면은 당시 영화에서나 즐길 수 있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어느 새 전시회에 휘어지는 스마트폰이 소개될 정도로 영화 속 기술은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 자체가 혁신이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직사각형이란 틀 안에서 혁신은 한계에 달했다는 평가다. 이를 해결해줄 대안이 곧 플렉시블 스마트폰으로 우리는 이를 ‘꿈의 스마트폰’이라고 부른다.
▶플렉시블 스마트폰의 핵심은 디스플레이=일단 보여지는 화면이 휘어지는 것이 플렉시블 스마트폰의 관건이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란 종이와 같이 수㎝ 이내로 휘거나 구부리고, 말 수 있는 얇고 유연한 디스플레이다. 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이 같은 플렉시블 디스플레이가 단기적으로 모바일 제품에 적용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용도 및 기능으로는 깨지지 않는(rugged), 굽혀지는(bending), 두루마기가 가능한(rollable)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 뱅크에 따르면 크게 4세대로 나눌 수 있는데 1세대가 깨지지 않는, 2세대가 굽혀지는, 3세대가 접고 두루말 수 있는, 4세대가 실제 종이와 같으면서 쉽게 인쇄가 가능한 단계다. 그 중 1세대 디스플레이가 적용될 수 있는 대상은 모바일이다. 특히 최근 출시된 스마트폰들이 해상도는 전보다 크게 향상됐지만, 외부충격에 여전히 약하다는 점에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의 이 같은 장점이 부각되고 있다.
이처럼 1차적으로는 깨지지 않는 특성의 디스플레이부터 선보일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현재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이 분야를 주도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해 플라스틱 기반의 풀컬러 2.8인치 플렉시블 AMOLED를 선보였다. 이는 10㎜가량 구부러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LG디스플레이 또한 유리와 메탈 호일을 이용해 6인치대의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 밖에 소니, 플라스틱 로직, AUO 등도 이 분야에 가세한 상태다. 업계에선 이르면 연내 스마트폰용 플렉시블 디스플레이가 생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메모리ㆍ배터리 등의 부품들도 플렉시블 기능 갖춰=하지만 디스플레이만 갖고 완전한 형태의 플렉시블 스마트폰을 구현해낼 수 없다. 다른 부품도 플렉시블 기능에 맞게 전환돼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최근 개발된 메모리, 배터리 등은 플렉시블 스마트폰에 대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 이건재 교수팀은 지난해 말 플렉시블 전자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휘어지는 비휘발성 저항메모리’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메모리는 저항메모리와 고성능 실리콘 반도체를 플렉시블 기판 위에 집적시켰다. 그동안 플렉시블 메모리 상용화를 저해했던 셀 간의 간섭현상을 해결한 것이다. 학계 및 업계에서는 플렉시블 전자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필수적인 메모리를 구현했다고 평가했다.
또 LG화학은 지난달 플렉시블 리튬-이온 배터리를 개발했다. 이전에 나온 배터리들은 손목시계보다 큰 기기에선 금세 전력이 소모됐지만, LG화학이 고안한 배터리는 더 큰 기기에도 적합하다. 배터리는 니켈-주석 합금도금의 선을 구리로 코팅해 이를 돌돌 말은 형태다. 이는 마치 강력한 스프링과 같은 기능으로 리튬-이온 셀이 매듭으로 묶인 상태에서도 배터리 기능을 할 수 있다. 때문에 이 역시 비틀림, 구부림, 감기, 매듭으로 묶기 등의 모습으로도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특히 외부의 강한 기계적 충격에도 높은 유연성과 함께 기능 불량 없이 큰 변형을 견딜 수 있었다. 이 같은 유형의 배터리는 현재의 플렉시블 에너지 저장 장치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마트폰 제조사들 플렉시블 특허 강화=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에 따르면 애플은 올 3월 ‘휘는 화면을 장착한 전자기기(Electronic devices with flexible display)’ 디자인 특허를 출원했다. 이 특허는 국제특허협력조약(PCT)에 따른 국제 특허로 관련 지정 국가에는 한국(KR)도 포함됐다. 특허 문서에는 아이폰과 비슷한 모습을 한 단말기의 앞면이 휘는 그림이 포함돼 있다. 이 기술은 각각의 모바일 단말기 케이스 디자인에 맞는 플렉시블 스크린을 제공한다. 또 스크린 아래에 마이크나 스피커를 장착할 수 있고, 터치패드도 볼록하거나 오목하게 만들 수 있다.
LG전자는 지난달 미국 특허청으로부터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사용자환경(UI) 관련 특허를 획득했다. 두 개의 디스플레이를 겹친 상태에서 작업을 실시 중인 화면이 첫 번째 디스플레이에 나오고, 두 번째 디스플레이에 다른 기능이 위치한다. 이에 인터넷 검색을 하다 디스플레이를 접거나 구부려 뒤의 디스플레이에 있는 갤러리를 터치하면 사진을 볼 수 있다. 좌우로 화면을 이동시키는 기존 방식과 달리 스마트폰 디스플레이를 마치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들추는 것이 가능하다.
정태일 기자/killpas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