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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타에 미쳐 학교마저도 포기한…
하은 · 하진 남매 ‘코갓탤’서 신들린 연주로 인기…그 뒤엔 기타로 緣 맺은 범상치 않은 부모가…기타에 목숨 건 가족연주단 ‘필로스’의 음악 이야기
‘기타 신동’으로 불리는 10대 남매가 있다. ‘필로스(pilos)’의 멤버 장하은(17) 양과 하진(16) 군이다. 이들은 기타를 치기 위해 학교를 자퇴했다. 기타를 배운 지 2년. 전문적인 공연을 다닐 정도가 됐다. 기타꾼들도 이들 남매의 실력에 혀를 내두른다.

몇 달 전 출연한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음악감독 박칼린과 영화감독 장진으로부터 ‘돈을 내고서라도 보고 싶은 공연’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남매다.

당장 유튜브(www.youtube.com)에 들어가 ‘pilos’라는 검색어를 입력한 뒤 나오는 동영상을 보면, 하은ㆍ하진 남매의 기타 연주에 깜짝 놀란다. 닭살이 돋고, 저절로 흥이 생긴다. 발로 박자를 맞추고, 고개를 끄덕인다. 음악을 알건, 모르건 중요하지 않다.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그들의 팬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 남매의 트레이드마크는 흥에 겨운 현란한 연주다. 하은 양이 특유의 환한 미소와 함께 기타 통을 두드리며(퍼커션) 기타줄을 튕기는 연주를 하고, 하진 군이 빠른 손놀림(속주)을 선보이면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이들의 연주에 푹 빠져든다.

사실 필로스는 가족 연주단이다. 부산 칼빈 신학대학교의 기타과 장형섭(56) 교수와 그의 아내 이현주(43) 씨는 물론 하은 양, 하진 군 네 명으로 구성돼 있는 기타 콰르텟이다.

이 가족 연주단은 4년 전부터 학교, 고아원, 군부대 등을 다니며 위문 공연을 100여차례 해왔다. 이 때문에 이미 기타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유명하다. 필로스는 현재에도 활발한 공연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기타의 아름다운 음색을 들려주고 있다.

가을 정취가 한껏 묻어나는 10월 어느날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본사에서 공연을 앞둔 필로스를 만났다. 가족 네 명의 얼굴에선 인터뷰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가족연주단 ‘필로스(pilos)’의 네 멤버인 장형섭 씨, 이현주 씨, 하은 양, 하진 군. 이들에게는 ‘가족’만큼 소중한 게 없다. 가족을 위해 기타를 연주하고, 기타를 위해 학교를 자퇴했다. 환한 웃음을 짓는 이들의 얼굴에서 장밋빛 미래가 엿보인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장형섭 교수…기타와 함께한 40년=장 교수는 독주회 8회를 개최한 중견 기타리스트로 부산에서 기타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아내 현주 씨는 이 아카데미에서 기타와 플루트를 가르치고 있다.

장 교수는 젊은날 기타에 심취했다. 정규적인 기타 교육을 받지 못하고 17세부터 독학으로 기타를 배웠다. 기타는 그에게 인생의 동반자였다. 기타는 또 아내를 만나게 된 계기도 됐다. 1988년 인천에서 기타학원을 운영하면서 인천대학교 기타반에도 참여했는데, 당시 대학생이었던 현주 씨를 만나게 됐다. 현주 씨 역시 장 교수를 만나면서 음악 공부를 뒤늦게 시작했다. 현주 씨는 결혼한 뒤에는 대학원에 입학해 기타와 플루트를 공부했다.

장 교수는 1995년 현주 씨와 결혼한 뒤 건축회사 등 직장생활을 하다가 1996년 강화도에 카페를 열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로 3년 만에 폐업한 뒤 이곳저곳을 전전하게 됐다.

그는 “건강식품도 팔아보고 안 해본 일이 없다. 공사장에서 심하게 다친 적도 있다. 인대가 다 보일 정도였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2000년 여름에는 경기 안양 근처에서 네 가족이 텐트를 치고 살기도 했다.

“힘든 시기였죠. 평소 싸운 적 없던 우리 부부도 싸움이 잦았던 시기였어요. 하지만 기타를 연주할 수 있었기 때문에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죠.”

부부는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 앞에서 싸우는 일은 없었다. 아이들이 보지 않는 곳에 가서야 큰소리를 냈다.

2004년 부산에서 기타 아카데미를 열게 되면서부터 하은ㆍ하진 남매가 자연스럽게 악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 기타 아카데미는 아이들을 위한 이유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나중에 기타리스트가 되는 것을 원했죠. 또 하은이와 하진이가 어릴 적부터 음악적인 감각이 뛰어난 것을 보고 기타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기타 독주 연주회도 여러 번 하게 됐죠.”

▶학교가 중요한 게 아니다=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리코더 연주로 당당히 무대에 섰던 하은 양은 피아노, 플루트, 드럼, 해금 등 못 다루는 악기가 없을 정도로 음악적 자질이 뛰어났다.

하지만 하은 양과 하진 군은 초등학교 때까지 기타를 싫어했다. 기타를 만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작은 계기로 인해 남매는 자발적으로 기타를 시작했다. 하은 양은 2010년 2월 중순 부산 기타문화원에서 세계적인 여류 기타리스트 박규희 씨의 연주를 본 뒤 기타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당시 박규희 언니의 기타 연주를 보고 한눈에 반했죠. 너무 멋있어 보여 기타에 관심이 생겼어요.”

이후 하은 양이 학교를 자퇴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 자퇴를 제안한 것은 장 교수였다. “기타를 배운 지 두 달이 지나고 재능이 많이 보였죠. 가르치면 가르치는 대로 다했어요.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고 기타를 치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습니다. 자기가 좋아서 하면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하은 양이 자퇴에 대해 고민한 시간은 단 열흘이었다. 지난 2010년 3월께 열흘 동안 생각한 뒤 하은 양은 자퇴를 결정했다.

“중학교 2학년 때 기타에 전념하기 위해서 학교를 그만뒀어요. 학교를 그만두는 게 그리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혁신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이후 8개월 후 하진 군도 자퇴를 했다. 사실 처음에 하진 군은 자퇴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장 교수도 하진이는 남자이기 때문에 학교를 다니는 게 좋을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누나가 기타 공부를 하는 것을 보면서 하진 군도 기타에 대한 열정이 꿈틀거렸다. 결국 11월 말에 학교를 그만뒀다. “사실 누나가 학교 안 가는 것이 샘이 나기도 했어요. 물론 누나가 음악하는 모습이 제일 부러웠죠.”

남매는 하루에 10시간 가까이 기타를 쳤다.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자퇴를 한 뒤 오히려 공부하는 시간이 늘었어요. 내 인생을 스스로 결정했다는 책임감이 들어서인 것 같아요. 또 기타를 치니까 깊이 생각하는 버릇도 생겼고 집중력도 좋아졌죠.”

2011년 5월 하은 양은 기타 배운 지 1년 만에 제4회 한국기타연주가협회 전국 학생콩쿠르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하진 군 역시 이 대회에서 은상을 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하은 양이 초등생이었던 2008년부터 필로스는 위문공연을 다녔다. 당시 초등생이었던 하은 양은 리코더를 불었는데 군인들의 반응이 대단했다.

2010년 이후 아이들이 자퇴를 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가족 네 명은 전국 각지로 위문공연을 다녔다. 부산, 거제 등의 고등학교, 논산훈련소, 최전방 부대, 고아원 등에서 100여회 이상 위문 공연을 했다.

“군대에 있던 시절, 제대를 하면 꼭 군부대 위문 공연을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군부대 위문공연을 많이 다니는데 지난 설날 때 논산훈련소의 7000여명 장병 앞에서의 공연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학교도 과감하게 포기한 채 꿈을 향해 걸어가기 때문일까. 하은ㆍ하진 남매는 잘 웃는다. 두 남매의 밝은 미소를 보면 행복 바이러스에 감염될 것만 같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가족공연을 다니면서부터 하은ㆍ하진 남매의 웃음이 많아졌다. 이들 남매가 웃는 일이 늘어나자 장 교수와 현주 씨 역시 아이들을 따라 웃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가족이 제일 중요하죠. 가족이 함께 기타를 치니까 결속이 되고 온 가족이 행복함을 느끼고 있어요.”

하루 종일 붙어있어도 하은ㆍ하진 남매가 싸우는 일은 전혀 없다. 연습실이 따로 없어 부모님의 기타 아카데미 등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연습하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힘들 법도 하지만 오히려 남매간의 우애는 더욱 돈독해졌다. 활동적인 성격의 하은 양이 이끄는 대로, 약간 내성적인 하진 군이 잘 따라준다. 장 교수는 “공연을 앞두고 하은이와 하진이가 서로 의논해 가면서 기타를 조율하는 모습이 굉장히 보기 좋다”며 웃음을 지었다.

현주 씨는 자식들이 하고 싶은 일을 잘할 수 있게 이끄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하은이와 하진이가 못하는 것도 많아요. 이것저것 잘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로 가르치는 것보다는 아이들이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공연을 자주 다니는 것은 아이들에게 무대 경험을 많이 쌓게 하려는 이유도 있다. 자연스럽게 공연을 다니면서 기타를 배우고 관객들과 호흡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가족연주단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항상 든든한 지지자가 있다는 걸 믿게 해주고 싶어요.”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 후 얻은 자신감…세계 진출의 계기=하은ㆍ하진 남매는 몇 달 전 tvN 재능오디션 프로그램 ‘코리아 갓 탤런트 2’에 출연했다. 첫 출연 이후 반응은 뜨거웠다.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고 이들의 공연 영상이 온라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비록 TOP 21에는 아쉽게 탈락했지만 오디션 출연은 새로운 계기가 됐다.

기타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남매는 자퇴를 한 이후 기타에만 매진하다가 조금 방황하는 시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오디션 출연 후 큰 용기를 얻었고, 자립심도 더욱 커졌다. 하은 양은 의자에 앉아서만 연주할 수 있는데, 서서 연주할 수 있게 연습하는 등 스스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오디션 참여를 계기로 자신감과 열정, 기타에 대한 사랑, 가족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됐죠.”

오디션 참가는 또 다른 행운도 가져다 줬다. 유튜브 등을 통해 전 세계로 알려지면서 핀란드의 기타픽업 제조업체 ‘비밴드(B-Band)’의 모델로 선발돼 중국 등 세계 진출 앞두고 있는 것이다.

장 교수는 “필로스가 내년 4월 베이징 악기 박람회에서 공연하게 됐다. 중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남매에게는 하고 싶은 일과 꿈이 많기 때문. “곡도 쓰고 싶고 공부도 잘하고 싶죠. 노래와 춤에도 욕심이 많아 가끔씩 연습하고 있어요.” 하은 양은 봉사를 하고 싶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죠. 아프리카에 가서 내 연주를 들려주고 싶어요.”

하진 군은 멋진 기타리스트를 꿈꾼다. “멋진 기타리스트가 돼 세계에 한국의 클래식 기타를 알리고 싶어요.”

장 교수와 현주 씨 역시 아이들과 같은 꿈을 꾼다. “아이들이 대학에 가서도 기타를 전공하기를 원하고 있어요. 또 세계적인 가족 연주단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기타 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고 싶기도 하죠. 손주ㆍ손녀가 생기면 같이 세계를 다니면서 공연을 하고 싶어요.”

민상식 기자/m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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