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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세계의 돈은 누가 지배하는가
[헤럴드경제=양춘병 기자]세계 금융의 지배자는 누구인가. 17세기 초 금융강국 네덜란드가 자본주의의 우산을 펼쳐 든 이래 수없이 반복돼 온 질문이다. 지구촌은 지난 400년 동안 상업, 산업, 독점, 다원화 자본주의의 길을 차례로 걸어왔다. 그 사이 금융패권은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다시 미국으로 옮겨갔고, 동인도회사, 로스차일드, 록펠러, JP모건 등이 금융시장의 권좌를 다투며 명멸해왔다.

때에 따라 시장이 막강한 금력으로 정부를 배후조정하기도 했고, 정부가 강력한 공권력으로 시장을 통제하기도 했다.

이 질문은 자본주의의 헤게모니가 다원화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관심을 얻고 있다. 지구촌이 때 아닌 ‘돈의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의 포문은 미국의 중앙은행격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열었다.

FRB는 지난 2008년 부동산 거품과 함께 와르르 무너진 ‘금융 바벨탑’ 을 재건하기 위해 마른 논에 물대듯 돈을 살포하고 있다.

FRB의 대규모 돈 살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만 세차례나 이뤄졌다. 뒤따라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 중앙은행(BOJ)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양적완화 정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늘어난 유동성은 성장 잠재력이 높은 개도국으로 밀려들고, 개도국 정부는 자국 통화의 가치 인플레를 막으려 또 다시 돈을 풀고 있다. 한국만 해도 660조원에 이르는 유동자금이 시중을 떠돌고 있다. 이른 바 저성장ㆍ저금리 하에서 벌어지는 ‘환율전쟁’이다.

FRB를 발원지로 하는 돈의 홍수가 세계 곳곳을 범람시키고 있는 현 상황은 분명 FRB 천하라 불릴 만하다.

지난 1996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경제가 ‘골디락스(고성장ㆍ저물가)’의 대호황을 누릴 때만해도 금융 권력의 추는 시장으로 기우는 것처럼 보였다. 씨티그룹, 골드만삭스, 조지소로스의 퀀텀펀드 등 글로벌 금융 플레이어들은 천문학적인 수익을 기록하며 돈의 지배자로 군림했다. 워런버핏은 오마하의 현인(賢人)으로 칭송받으며 빌 게이츠와 함께 세계 최고 부자자리를 다퉜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무너진 2008년 이후 세계의 돈 줄을 쥐략펴략하는 건 FRB와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들이다.

3조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을 자랑하는 중국도, 800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관리하는 세계 최고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도, 재산이 730억 달러에 이르는 멕시코 통신재벌 카를로스 슬림도 FRB의 통화정책에서 자유롭지 못한 신세다.

벤 버냉키 의장은 ‘세계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렸던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과 ‘인플레이션 파이터’ 폴 볼커 전 의장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때마침 올해는 FRB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세계 금융의 주도권을 거머쥔 채 100주년을 맞는 FRB로서는 영예로울 법도 하다. 그러나 FRB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경제 회복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FRB의 화폐 남발은 미국의 재정을 한층 악화시키고 신용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연이은 양적완화로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유동성도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전임 의장인 그린스펀의 저금리 기조와 부동산 거품 붕괴의 연관성을 기억한다면 천문학적인 선진국의 유동성 회수 과정에서 파생될 후폭풍은 가히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FRB가 장기적인 물가안정보다는 지나치게 단기적인 경제현상을 개선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분명한 것은 FRB는 지금 세계 금융의 우뚝 선 지배자로, 국제 금융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전대미문의 실험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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