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작가 작품 남성보다 저평가
미술시장 ‘숨은 보석찾기’ 분주
크리스티 모리조 125억 낙찰 ‘경악’
구사마 야요이 등도 기록경신 주목

美 인물화가 ‘앨리스 닐’ 서울전
사후 작품세계 재조명·평가 작업활발



중세 및 근대는 물론, 20세기에 들어서도 여성 화가들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올 2월, 영국 런던 크리스티경매에서 베르트 모리조(프랑스)의 1881년작 ‘점심식사 후’가 무려 1098만달러(약 125억원)에 팔리면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모리조는 미술 경매 사상 여성 화가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모리조의 기록은 여성 화가들이 힘을 갖게 된 일대 사건이다. 그간 장롱 속에 갇혀 있던 여성 화가들의 그림이 몇 년 새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수백년째 여성 화가의 작품은 같은 학교, 같은 계열의 남성 화가에 비해 10분의 1 이하 가격으로 저평가됐었다. 하지만 2006년 미술 시장이 엄청난 활황을 이루면서 딜러들은 ‘숨어 있는 보석 찾기’에 바쁘다.

WSJ는 “모리조의 최고가 기록은 곧 깨질 것”이라며, 지난 5년간 경매가 상위 ‘톱 10’의 작품 중 여성 미술가의 작품이 전례없이 다수 포진했던 것을 근거로 들었다. 조앤 미첼, 타마라 드 렘피카, 루이스 부르주아가 그 주인공이다.

또 현존 여성 화가 중 경매 낙찰 총액 1위(1억1180만달러)를 기록 중인 구사마 야요이(84)와 사진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기록(389만달러)을 보유 중인 신디 셔먼(59)도 주목 대상이다. 여성 작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하는 앨리스 월턴(월마트 상속인), 팝스타 마돈나, 가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활약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미술계에서 알아주는 열혈(?) 미술애호가인 마돈나는 렘피카 및 프리다 칼로(멕시코ㆍ1907~1954)의 열렬한 팬으로, 이들의 작품이 미술 시장에 나오면 팔을 걷어붙이고 수집하고 있다.

이렇듯 여성 작가의 작품은 최근까지도 과소 평가됐으나 요즘에는 잠재력이 큰 것으로 평가되며 인기가 높다. 이는 남다른 감수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인물화가’ 앨리스닐은 일평생 강렬하면서도 재기 넘치는 인물화로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했지만 74세에야 미술관 초대전을 할 정도로 뒤늦게 조명받았다. 인물의 겉모습이 아닌 내면을 표현했던 앨리스 닐의 1948년작‘ Sue Seely & her Husband’ (63.8×86.5㎝) ⓒEstate of Alice Neel.   [사진제공=갤러리현대]

더구나 미술 시장뿐 아니라 미술계 전반에서도 여성 작가의 작업을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굴지의 미술관에서 여성 작가 작품전이 앞다퉈 열리고 있고, 비엔날레 등에서도 여성 작가 작품을 무시로 만날 수 있다. 이제 작품만 독창적이라면 성별은 하등의 고려 사항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20세기의 대표적 인물화가’로 불리는 앨리스 닐(미국ㆍ1900~1984)도 뒤늦게 각광받고 있는 여성 화가다.

닐은 영국 화가 루치안 프로이트(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와 쌍벽을 이루는 인물화가지만 생전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별반 조명받지 못했다. 특히 사조를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노선을 걸은 것도 주목받지 못한 요소였다. 그러나 뜨거운 열정과 뛰어난 통찰력을 기반으로, 인간의 내면을 통렬하게 드러내는 앨리스 닐의 작품은 후대 작가들에게 큰 영감을 줬다.

그는 미니멀리즘(1960년대)ㆍ개념주의(1960~70년대) 등의 유행 사조와 상관없이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사실적이고 표현주의적 화풍을 고수했다.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산업화라는 물결 속 미국인의 내면을 진솔하게 그린 것. 인물화를 통해 미국의 시대사상을 담아냈던 앨리스 닐은 ‘영혼의 수집가’임을 자임했다. 특히 여성의 내면에 귀 기울였다. 굴곡 많은 삶을 살며 보헤미안처럼 생을 마감한 그는 일흔이 넘은 1974년에야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첫 회고전을 가질 수 있었다. 이후 작가 사후 그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무척 활발하다.

생전에 흑인 인권운동과 여성운동에도 관심이 많았던 앨리스 닐은 가족 및 지인뿐 아니라 빈민가 흑인과 히스패닉계의 사람들, 뉴욕 시장 에드 코흐 등 빈부 격차에 상관없이 인물의 내면을 꿰뚫는 강렬한 초상화를 남겼다. 그는 ‘좋은 인물화란 정확한 표현 이상의 다른 무언가를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앨리스 닐의 인물화를 볼 수 있는 전시가 아시아에서 최초로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개막됐다. 이번 개인전에는 1942~1981년 작업한 작품 15점이 내걸렸다. 오는 6월 2일까지. (02)2287-3500

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