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위크엔드>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그 곳, 고향을 그리는 3인 이야기
[헤럴드경제=서상범 기자]민족의 큰 명절 추석. 가족들과 함께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고 떠나온 고향의 그리움을 채우는 따뜻한 시간이지만 가고 싶어도 고향을 밟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와 이념의 선으로 인해 고향을 갈 수 없는 실향민, 멀리 고향을 떠나 이국만리에서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 외국인 근로자, 꿈을 위해 고향을 떠나 시험준비를 하는 고시생들이 바로 그들이다.

다른 날보다 더욱 고향생각이 간절해지는 추석을 앞두고 이들 3인을 만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들어봤다.

▶내 고향 평안북도 강계, 아직도 눈감으면 고향집이 생각나요=“산골마을 고향집 옆에 작은 과수원이 있었어요. 동무들과 함께 사과 서리도 하고 옆에 흐르는 실개천에서 고기를 잡기도 했죠. 60년이 훌쩍 넘었지만 고향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평안북도 강계가 고향인 실향민 오영하(79) 옹은 아직도 고향마을의 하나하나가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6ㆍ25전쟁 1년 전인 지난 49년 가족들과 함께 남으로 내려온 오 옹은 ”남한에서 결혼도 하고 자식출가까지 마치는 등 6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사라지지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추석, 설 등 명절이되면 북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이 더욱 밀려온다”며 “고향땅을 한번이라도 밟아보고 죽었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말했다.

한편 오 옹은 80년대는 이산가족 상봉의 열풍이 불고, 2000년대 초반에는 햇볕정책 등으로 인해 고향방문에 대한 기대감도 점점 커갔는데 최근 남북 긴장상태로 인해 실향민과 이산가족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라며 정치적 논리와 계산보다 실향민들을 위한 인도적 차원에서 정부와 북한측이 노력해줬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오 옹은 “추석이면 역시 실향민이었던 선친의 유해가 잠든 파주 통일동산에 들러 먼발치에서 고향땅을 바라본다”며 “자신은 파주가 아닌 강계 고향땅의 흙에서 쉴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애틋한 소망을 밝혔다.

▶가족들을 위해 가고 싶어도 참는다, 외국인 근로자=2년째 경기도 안산의 한 가구공장에서 일하는 베트남인 딴 루완(40) 씨는 “베트남에서도 음력 8월 15일은 ‘쭝투’(中秋)라고 불리는 명절”이라고 말했다. 딴 씨는 “한국의 추석처럼 민족이 대이동하는 큰 명절은 아니지만 쭝투는 가족과 아이들의 건강을 비는 날이기때문에 특히 아이들 생각이 많이 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인과 아들 2명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딴 씨에게 추석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꼭꼭 눌러둔 채 버텨야 하는 시간이다. 딴 씨는 “작년 처음으로 한국에서 보낸 추석연휴에 한국인 동료들이 가족들을 만나러 양손에 선물을 든 채 떠나는 모습이 너무 부러워 견딜수 없었다”며 “마음같아서는 자신도 베트남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가족을 만나고 싶지만 손편지와 작은 선물 몇 점 보내는 걸로 이번 추석도 버티려고 한다”며 아쉬운 마음을 애써 감췄다. 그는 “월급날 고국으로 송금을 할 때마다 이 돈이 가족들의 생활과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뿌듯함을 느낀다”며 “멀리 몸은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가족이 함께 한다는 생각으로 버틸 수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바나나 등 과일과 햅쌀로 만든 쭝투빵을 차려놓고 향을 피워 아이의 건강을 비는 것이 베트남의 쭝투 풍습”이라며 “오는 추석때 베트남 동료들과 함께 작은 제단을 만들어 멀리서라도 아이들의 건강과 가족의 안녕을 빌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모님과 친척들 볼 면목이 없어 합격하면 내려가야죠, 장수 고시생=공인회계사 시험을 6년째 준비중인 장수 고시생 김호영(32ㆍ가명) 씨. 경남 양산이 고향인 김 씨는 추석과 설 명절에 고향을 내려가지 않은지 올해로 3년째다. 대학졸업 전 시험을 준비할 당시에는 그래도 명절이면 내려가 부모님과 친척들 얼굴을 봤지만 졸업후 시험에 계속 낙방하면서 도저히 면목이 없어 고향을 내려가지 못하는 것. 3년전 추석에는 이제 포기하고 취업준비라고 해야하지 않겠냐는 친척의 한 마디에 마음의 큰 상처를 입고 합격하기 전에는 다시는 고향집 문을 밟지않는다는 결심을 하기도 했다. 그동안 절치부심 노력해 1차 시험 합격도 했지만 2차 시험에 계속 미끄러진 김 씨는 내년 2월 시험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다. 시험준비로 인해 토익성적은 물론, 그 흔한 기업인턴 경험도 없는 김 씨에게 시험합격은 마지막 남은 활로이기 때문이다. 김 씨는 “회계사 2차 발표가 8월 말에 나기때문에 6년동안 추석에 2차시험 합격증을 들고 당당하게 내려가는 꿈을 꿔왔다”며 “그래도 믿고 힘이 돼주는 부모님의 얼굴을 생각하며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명절에 목소리로만 안부를 전하는 못난 아들이 될 수 밖에 없어 명절 앞뒤로는 언제나 기분이 우울하다”며 “내년에는 반드시 2차합격을 해 부모님과 고향집에서 웃으며 추석을 보내기 위해 추석에도 학원 자습실에서 하루를 보낼 예정”이라고 김 씨는 말했다.



tiger@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