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이젠 DSR이다⑦> 디자인에 길을 물은 염리동…뒷골목이 ‘웃다’
공공성의 결정체, 시티 디자인
해질녘엔 인적드문 ‘어둠의 장소’…전봇대에도 범죄예방 ‘소금지킴이집’에도 노란옷 디자인
주민들 범죄공포 사라지고 지역공동체 유대감 강화·산책길로 대변신…학폭예방에도 효과



디자인은 이제 감각을 자극하는 눈요깃거리가 아니다. 디자인은 인간의 감성과 심리를 자극해 사회 변화까지 가져온다. 

오늘날의 디자인은 범죄를 예방하고 사회적 약자까지 돕는다. 갈수록 거대하고 첨단화되는 도시 이면의 문제, 도시화라는 난제 앞에 디자인이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론 속 얘기가 아니다. 효과까지 입증된 실제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대대적인 실험에 나섰다. 

재개발 예정지역으로 낙후돼 대표적인 우범지역으로 꼽혔던 마포구 염리동 일대에 디자인을 ‘입힌’ 것이다.

단순히 알록달록하고 웅장한 조형물을 세워놓은 게 아니었다. 고도의 심리기법을 활용한 디자인을 도입했다. 바로 서울시의 ‘범죄 예방 디자인’이다. 범죄를 예방하는 환경 설계 이론인 ‘셉테드(CPTEDㆍ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에 디자인을 접목시킨 것이다.

‘셉테드’가 도시가 설계되는 단계에서 진행되는 범죄 예방 디자인이라면 서울시의 ‘범죄 예방 디자인’은 이미 조성이 끝난 도시 안에 접목되는 범죄 예방 디자인이다. 예방과 함께 수용자들의 거부감을 없앤 디자인이라는 점은 ‘셉테드’와의 또 다른 차이점이다.

디자인은 세상을 바꾼다. ‘시티 디자인’은 그것을 사례로 입증하고 있다. 어두운, 약간은 우울한 도시가 있다면 이를 밝고 흥겨운 곳으로 디자인하는것, 그것을 통해 범죄 없는 안전한 도시를 견인하는 것이 시티 디자인의 역할이자, 책임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로 꼽히는 염리동은 거미줄처럼 나 있는 좁은 골목길에 조명시설까지 열악했다. 어스름 해 질 녘이면 인적이 끊겨 골목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겐 공포의 장소로 여겨졌다. 자칫 범죄의 타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범죄 예방 디자인은 미로처럼 연결된 골목길을 산책길로 변신시켰다. ‘소금길’이란 이름도 지어줬다. 과거 이 일대가 소금장수들이 많이 산 곳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1.7㎞ 산책 코스로 꾸며진 소금길 위 전봇대엔 노란 옷을 입혀 순서대로 숫자를 달았다. 총 69개의 전봇대다. 위험한 일이 생기면 전봇대 번호가 있는 위치로 경찰이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도록 했다.

범죄 발생 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소금 지킴이집’ 6곳도 만들었다. ‘지킴이집’은 대문을 노란색을 칠했고 사인 조명과 비상벨 등을 달았다. 누군가 범죄의 위험에 처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골목길 파출소 역할을 하는 셈이다.


소금길 곳곳엔 신체 부위별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기구와 안내판을 설치했다. 더 많은 사람이 다니도록 유도해 범죄 가능성을 줄이겠다는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동네 곳곳에 밝은 조명과 감시카메라도 소금길을 밝혔다. 미혼 여성들이 살고 있는 다세대주택의 경우 외부 배관이나 창틀에 흔적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형광페인트를 칠해 범죄를 예방했다. 골목길의 낡은 벽면은 밝은 느낌의 벽화를 그려 넣어 범죄심리를 위축시켰다.

범죄 예방 디자인이 적용된 뒤 염리동의 모습은 180도 바뀌었다. 뭔가 꺼리게 되던 골목길은 언제나 쉽게 다닐 수 있는 산책길이 됐다. 서울시가 지난해 10월과 올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염리동 주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개월간 주민 자신과 가족에 대한 범죄 두려움은 각각 9.1%, 13.6% 줄어들었다.

예상치 못한 변화도 있었다. 지역사회의 유대와 응집력이 커졌다. 동네 주민들이 직접 벽화를 그리고 마을을 꾸미면서 공동체 의식이 싹튼 것이다. 실제 소금길 조성 이후 주민들의 동네에 대한 애착은 13.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들의 참여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을 그들 스스로 발견하게 했다.

범죄 예방 디자인을 도입한 강서구 공진중학교는 학교폭력이 크게 줄었다. 주변 4400여가구의 영구 임대 아파트 저소득층의 아이들도 전보다 밝아졌다.

시는 페인트칠이 벗겨질 정도로 방치되거나 흰색이나 회색이었던 교실과 복도를 채도가 높은 다양한 색과 그림으로 꾸몄다. 학교폭력과 흡연 등이 일어나던 어두운 구석의 탈의실이나 교내 후미진 곳엔 댄스 무대, 암벽 등반장, 샌드백 등을 설치했다. 폐쇄회로TV(CCTV)도 달았다.

변화는 서서히 나타났다. 사각지대는 아이들이 친구들과 놀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어 갔다. CCTV 모니터를 학교 중앙현관에 설치해 춤추고 암벽 타는 아이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공개될 수 있도록 하자, “감시받는다”며 반발하던 아이들은 CCTV를 놀이기구로 받아들였다.

시는 디자인이 범죄와 학교폭력 예방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올해 말까지 중랑구 면목4ㆍ7동, 관악구 행운동, 용산구 용산2가동 등 세 곳에 범죄 예방 디자인을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황혜진 기자/hhj6386@heraldcorp.com

■DSR란?=헤럴드경제가 매주 게재하는 디자인면의 주제는 ‘이젠 DSR(디자인의 사회적 책임ㆍDesign’s Social Responsibility)이다’입니다. 단순한 제품과 상품 디자인을 넘어 사회적 책임을 담은 디자인, 성과와 혁신을 넘어 공존의 가치를 담은 디자인, 그것이 바로 DSR입니다. 헤럴드경제가 연중 최대 행사로 10월 진행하는 ‘헤럴드디자인위크 2013(Herald Design Week 2013)’ 전까지 게재되는 이 지면에서 독자 여러분은 디자인의 미래 창(窓)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