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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란 선임기자의 art&아트> 한떨기 모란처럼 피어난 경주의 남산
한국화가 박대성 가나아트센터서 24일까지 ‘원융’展
외국미술만 경외시하는 현실에 낙향
7년 만에 대표작 등 50여점 출품

서예로 다져진 필력·파격적 화면구성
막힘없고 조화이룬 ‘생동하는 한국화’


“어찌된 일인지 우리 건 무시하고, 외국미술만 좋다고 하네요. 요즘 들어 이런 현상이 더해요. 남의 부모가 좋아 보인다고, 내 부모 내팽개치면 되나요?”

한국화가 소산(小山) 박대성(68) 화백은 트렌디한 해외 현대미술만 쫓는 우리 미술계 풍토를 개탄했다. ‘중심을 잃고 부평초처럼 휩쓸리는 세태’가 마땅찮아 경주 남산 솔숲에서 두문불출하며 작업에만 매달려 왔다. 그리고 7년 만에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원융’이라는 타이틀로 개막된 개인전에 소산은 치밀하면서도 장대함이 돋보이는 대표작과 보다 자유로워진 신작 등 50여점의 회화를 내놓았다.

국내서는 오랜만에 작품전을 열지만 해외 전시는 계속 이어져 왔다. 지난 9월에는 터키 이스탄불 마르마라대학의 공화국갤러리에서 가로 8m의 대작 ‘불국설경’ 등 수묵화 30여점을 선보여 호평을 이끌어냈다. 또 2011년 베이징 중국미술관에서의 개인전도 현지 문화계에 이슈를 던진 바 있다. 전통적인 소재와 기법을 지키면서도 현시대와 통하는 ‘생동하는 수묵화’라는 평이 이어진 것. 박 화백의 인생역정은 한 편의 드라마다. 그는 한국전쟁 때 부모를 여의고, 빨치산에게 왼팔을 잃었다. 그런 장애 때문에 홀로 작업할 수 있는 그림에 더 빨려들었다. 독학으로 묵화부터 고서까지 연마한 그는 겸재에서 소정, 청전으로 이어지는 ‘실경산수의 계보를 잇는 작가’로 불린다.

그런 그가 가장 잊지 못하는 순간은 1995년 불국사에서의 첫날밤이다.

‘자발적 유배자’처럼 경주로 낙향해 작업하는 박대성이 그린 ‘남산’. 돌부처와 탑이 즐비해 산 전체가 박물관인 남산을 모란처럼 표현했다. 270x280cm. 2010                                                                                                                      [사진제공=가나아트]

“꼭 지금 무렵이네요. 11월의 어느 쌀쌀한 가을밤, 휘영청 달이 떠 있는 불국사 앞마당을 걷고 있자니 ‘신라의 왕자’가 된 기분이었죠. 신혼여행 첫날밤보다 더 떨리고, 환장하게 좋아 화장실을 예닐곱 차례나 다녀왔어요. 그 흥분된 심정으로 불국사를 그렸지요.”

그날 밤 이후 그는 ‘불국사 작가’가 됐다. 그런데 불국사 행은 뜻밖에도 뉴욕에서 잉태됐다.

1990년대 초반까지 박 화백은 국내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화가였다. 제주신라호텔 로비, 63빌딩 로비 등 요소요소에 그림이 내걸렸고, 대작 주문도 밀려들었다. 그런데 달콤한 인기에 함몰됐다간 큰일나겠다 싶어 1994년 모든 걸 뒤로 하고, 뉴욕으로 훌쩍 떠났다. 현대미술을 공부하겠다는 목표아래 뉴욕의 아트스튜던트리그를 1년여 다니던 어느 날, 불현듯 경주 남산이 떠올랐다. 몇 년간 체류하려던 계획을 접고, 다시 보따리를 쌌다.

그리곤 경주로 무작정 찾아들었다. 주지스님에게 “불국사를 그리고 싶다. 그림 그릴 거처를 내달라”고 청했다. 때마침 불국사와 석굴암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어 소산은 행랑채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리곤 맨하탄에서 꿈꿨던 불국사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듬해(1996년) 박 화백은 인사동에서 불국사 그림을 모아 개인전을 가졌다. 당시 ‘그림에서 광채가 난다’는 소문이 인사동에 빠르게 퍼졌다. 불국사 전경을 그린 가로 9m의 ‘천년배산’과 가로 8m의 ‘불국설경’ 때문이었다. 이옥경 가나아트갤러리 대표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전율이 인다. 작품 설치를 마치고 전등 스위치를 내렸는데 그림에서 빛이 나며 주위가 환해지는 거였다. 깜짝 놀랐다”고 회고했다. 이들 작품은 엄청난 대작이어서 판매는 꿈도 안 꿨는데 개막 전에 팔렸다.

이후 작가는 경주서 독거생활을 하며 작업 중이다. 고향도 경주가 아니고, 종교도 천주교지만 경주남산의 불상과 분황사탑, 500나한을 그리고 있다. 먹의 고매한 빛깔로, 또 서예를 통해 다진 견고한 필력으로 약동하는 생명력을 화폭에 구현하며 먹의 정신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

전시의 제목은 ‘원융(圓融)’이다. ‘원융’이란 ‘모든 것이 막힘 없이 조화를 이룬 경지’를 말한다. 그래서일까. 그가 그린 남산은 한 떨기 탐스런 모란처럼 둥글고, 분화사탑도 소나무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번에 다시 그린 불국사의 겨울풍광(가로 8m) 또한 압권이며, 호방한 금강산 그림에선 자유로운 정신세계가 살아숨쉰다. 전시는 24일까지. (02)720-1020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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