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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공을 초월해, 정신의 조화를 향해, 박대성의 ‘원융’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어찌된 일인지 우리 건 무시하고, 외국미술만 좋다고 하네요. 요즘들어 이런 현상이 더해요. 밖에서 볼 땐 자존심도 없어보이는 건데.. 남의 부모가 좋아 보인다고, 내 부모 내팽개치면 되나요?”
 
한국화가 소산(小山) 박대성(68) 화백은 트렌디한 해외 현대미술만 쫓는 우리 미술계 풍토를 개탄했다. ‘중심을 잃고 부평초처럼 휩쓸리는 세태'가 마땅찮아 경주 남산 솔숲에 두문불출하며 작업에만 매달려왔다. 그리고 7년 만에 가나아트갤러리(대표 이옥경) 초대로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원융이라는 타이틀로 개막된 개인전에 소산은 치밀하면서도 장대함이 돋보이는 대표작과 보다 자유로와진 신작 등 50여점의 회화를 내놓았다.
 
국내서는 오랫만에 작품전을 열지만 그의 해외 전시는 계속 이어져왔다. 지난 9월에는 터키 이스탄불 마르마라대학의 공화국갤러리에서 가로 8m의 대작 불국설경등 수묵화 30여점을 선보여 호평을 이끌어냈다. 2011년 베이징 중국미술관에서의 개인전도 현지 문화계에 이슈를 던진바 있다. 전통적인 소재와 기법을 지키면서도 현시대와 통하는 생동하는 수묵화라는 평이 이어진 것이다. 
 
 
 박대성 화백의 인생역정은 한편의 드라마다. 그는 한국전쟁 때 부모를 여의고, 빨치산에게 자신의 왼팔을 잃었다. 그런 장애 때문에 홀로 조용히 작업할 수 있는 그림에 더욱 빨려들었다. 독학으로 묵화부터 고서까지 연마한 소산은 겸재에서 소정,청전으로 이어지는 실경산수의 계보를 잇는 작가로 불리운다.
 
그런 그가 가장 잊지 못하는 순간은 1995년 불국사에서의 첫날 밤이다.
 
꼭 지금무렵이네요. 11월의 어느 쌀쌀한 가을밤, 휘영청 달이 떠있는 불국사 앞마당을 걷고 있자니 신라의 왕자가 된 기분이었죠. 신혼여행 첫날밤 보다 더 떨리고, 환장하게 좋아 화장실을 예닐곱차례나 다녀왔어요. 그 흥분된 심정으로 불국사를 그렸지요
 
그날 밤 이후 박화백은 불국사 작가'가 됐다. 그의 불국사 행은 뜻밖에도 뉴욕에서 잉태됐다 
 
 
 1990년대 초반까지 박화백은 국내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화가였다. 제주신라호텔 로비, 63빌딩 로비 등 요소요소에 그의 압도적인 대작이 내걸렸고, 주문도 밀려들었다. 그런데 달콤한 인기에 함몰됐다간 큰일 나겠다 싶어 1994년 모든 걸 뒤로 하고, 뉴욕으로 훌쩍 떠났다. 현대미술을 공부하겠다는 목표아래 뉴욕의 아트스튜던트리그를 1년여 다니던 어느날, 수채화수업 시간에 불현듯 경주 남산이 떠올랐다. 몇년간 뉴욕에 체류하려던 계획을 접고, 다시 보따리를 쌌다.
 
그리곤 경주로 무작정 찾아들었다. 주지스님에게 불국사를 그리고 싶다. 그림 그릴 거처를 내달라고 청했다. 때마침 불국사와 석굴암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어 소산은 행랑채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리곤 맨하탄에서 꿈꿨던 불국사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듬해(1996) 박 화백은 인사동에서 불국사 그림을 모아 개인전을 가졌다. 당시 그림에서 광채가 난다는 소문이 인사동 화랑가에 빠르게 퍼졌다. 불국사 전경을 그린 가로 9m천년배산과 가로 8m불국설경때문이었다. 이옥경 가나아트갤러리 대표는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전율이 인다. 작품설치를 모두 마치고 전등스위치를 내렸는데 그림에서 빛이 나며 주위가 환해지는 거였다. 깜짝 놀랐다고 회고했다. 이들 작품은 엄청난 대작이어서 판매는 꿈도 안꿨는데 개막 전에 팔렸다. 
 
 
 이후 작가는 경주로 낙향해 독거생활을 하며 작업 중이다. 고향도 경주가 아니고, 종교도 천주교이지만 그는 경주남산의 불상과 분황사탑, 500나한, 소나무를 그리고 있다. 추사가 유배지인 제주에서 세한도라는 불세출의 걸작을 그려냈듯 그 또한 자발적 유배지에서 먹의 고매한 빛깔로, 또 서예를 통해 다진 견고한 필력으로 약동하는 생명력을 구현하고 있는 것. 그는 종국적으론 먹의 정신성을 생동감있게 드러내는데 혼신을 다하고 있다.
 
소산 그림은 근래들어 보다 자유롭게 풀어지고 있다. 구상, 추상이 넘나들고, 서예와 그림이 하나로 합쳐지며, 원근법도 뛰어넘은 그의 획기적인 화면구성과 과감한 붓의 운용은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도 어필하고 있다
 
전시의 화두는 원융(圓融)’이다. ‘원융이란 모든 것이 막힘 없이 조화를 이룬 경지를 말한다. 그래서일까. 그가 그린 남산은 한떨기 탐스런 모란처럼 둥근 원을 이루고 있고, 분화사탑도 소나무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번에 다시 그린 불국사의 겨울풍광(가로 8) 또한 압권이며, 호방한 금강산 그림에선 자유분방한 정신세계가 드러나있다. 하늘을 훨훨 나는 독수리가 돼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조감하는가 하면, 물고기의 시선으로 금강산을 하늘처럼 바라보기도 하니 그야말로 파격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말한다. ”한국화의 현대화가 과제이지만 우선 중봉(中鋒)을 알아야 한다. 중봉은 화가와 붓, 붓과 종이가 하나가 되는 몰입을 뜻한다". 내년 가을에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내에 그의 이름을 내건 시립미술관이 문을 연다. 전시는 1124일까지. (02)7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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