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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계 혁명가’ 로버트 프랭크...그의 주관적 다큐멘터리 사진 서울에 왔다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거칠지만 더없이 강력한 상징성을 지닌 ‘미국인’(The Americans)’시리즈로 세계 사진계에 파란을 일으켰던 로버트 프랭크(89)의 오리지날 사진이 한국에 왔다.

한미약품이 설립한 송파구 방이동의 한미사진미술관(관장 송영숙)은 개관 10주년을 맞아 올해 마지막 전시로 ‘현대사진사의 거장’ 로버트 프랭크 사진전을 마련했다. 이번 전시에는 퍼스널 다큐멘터리, 곧 ‘주관적 다큐멘터리’의 선구자로 불리는 로버트 프랭크의 원판사진 115점이 내걸렸다. 그간 국내에서 단작(單作), 즉 한두점씩만 간간히 소개됐던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이 이처럼 100여점 넘게 소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한미사진미술관은 스위스의 빈터투어사진미술관및 스위스사진재단법인과 손잡고 국내 최초의 로버트 프랭크 사진전을 꾸몄다. 출품작은 빈터투어사진미술관의 소장품이다. 

Movie Premiere, Hollywood, Gelatin silver print, 35.4ⅹ27.8cm,1955~56 ⓒRobert Frank [사진제공=한미사진미술관]

스위스 출신의 로버트 프랭크는 ‘세계 현대사진사는 로버트 프랭크와 함께 시작됐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진계에 크나 큰 파장을 몰고왔던 혁명가다. 특히 대표작인 ‘미국인’(The Americans·1958)시리즈는 전쟁 후 자만심에 부풀어 있던 미국인의 모습을 냉정하게 직시해 미국을 그야말로 ‘들었다놨던’ 사진들이다. 노출과 구도, 포커스를 제대로 맞추지 않은 사진 속 인물은 다소 기형적으로, 더러는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강력한 정치·사회적 상징성을 담고 있다. 그는 독자적인 시각으로 미국인들의 적나라한 일상을 기록했던 것이다. 따라서 로버트 프랭크의 작업으로 인해 사진계에는 ‘주관적 다큐멘터리’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이를테면 그의 ‘미국인’ 시리즈 중 가장 의미있는 사진으로 꼽히는 ‘City Fathers’(1955년 작)는 뉴저지 호보켄이라는 마을의 행사에 참석한 원로들을 정면이 아닌, 엉뚱한 시선으로 잡은 작품이다. 정장을 빼어입고 근엄한 모습으로 연단에 늘어선 인사들은 마치 꼭두극 속 인형처럼 보인다. 우측 끝사람은 누구와 입맞춤이라도 할 듯한 기세다. 

호보켄 시에서 펼쳐진 시가지 퍼레이드를 담은 사진도 삐딱하긴 마찬가지다. 요란스런 팡파레가 울리며 화려함의 극을 달릴 것에 틀림없는 시가지 퍼레이드를 내려다보는 2층 건물의 창가 시민은 펄럭이는 성조기에 가려, 또는 차양막에 가려 얼굴이 가려져 있다. 퍼레이드에 호응하는 시민들의 열띤 표정을 담곤하던 기존 사진들과는 정반대로, 로버트 프랭크는 그만의 방식으로 퍼레이드의 또다른 면모를 기록한 셈이다. 

Parade in Hoboken, Gelatin silver print, 14.3ⅹ21.5cm,1955 ⓒRobert Frank [사진제공=한미사진미술관]

‘City Fathers’와 함께 널리 알려진 사진 ‘Trolley’(1956)도 범상치 않다. 인종차별의 잔재가 여전하던 1956년, 남부 뉴올리언즈를 달리던 기차를 찍은 이 사진은 앞열및 후미열로 구분돼 여행길에 오른 백인과 흑인들의 생생한 모습을 살필 수 있다. 할리우드의 여배우를 찍은 사진 ‘Movie Premiere’(1955~56)도 주인공인 배우는 초점이 흔들려 뿌옇게 표현된 반면, 스타를 바라보는 시민들은 정확히 포착돼 대비를 이룬다.

전세계 수많은 사진학도들에게, 또 사진가들에게 큰 영감을 준 ‘New Mexico’(1955)라는 사진은 로버트 프랭크의 천재성을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지평선 쪽으로 곧게 뻗은 자동차도로를 좌우 2:3 비율로 찍은 수직의 사진은 ‘길’을 찍은 사진가들의 작품 중에서 가장 혁신적이며, 가장 아름다운 사진으로 꼽을만 하다. 이 사진과 함께 이 사진의 근원이라 할 로버트 프랭크의 또다른 길 사진(뉴욕에서 1948년에 찍은 사진이다)도 이번 전시에 나왔다.

1924년 스위스 취리히의 중상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프랭크는 젊은 시절 취리히, 바젤, 제네바의 아틀리에를 돌면서 도제식으로 사진을 배웠다. 1947년 미국 뉴욕으로 이주한 뒤로도 남아메리카와 유럽을 잇따라 여행하며 그들의 삶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리곤 미국 구겐하임 재단에 기금을 신청해 1955~1956년 미국 전역을 돌며 2만여점의 사진을 찍었다. 

New Mexico, Gelatin silver print, 22.2ⅹ15.5cm,1955 ⓒRobert Frank [사진제공=한미사진미술관]

2만여점의 사진 중 83점을 추려 1958년 프랑스에서 펴낸 책이 저 유명한 ‘미국인‘이다. 이 책은 이듬해 미국에서도 같은 제목으로 출간돼 ’기쁨이 없는 자(者)가 자기를 받아들인 나라를 증오했다’ ‘추함이 쇼킹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전쟁 승리 후 애국심과 낙관주의에 빠져든 미국을, 그들의 내밀한 일상을, 독자적인 시각으로 적나라하게 포착한 사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고난대로 솔직하게, 눈이 아닌 가슴으로 대상의 실체를 담으려 했던 프랭크의 파격적인 사진들은 이후 다큐멘터리 사진의 또다른 전범으로 자리잡았다. 그의 ’미국인' 시리즈는 사진집 중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됐다.
한미사진미술관 학예팀과 함께 이번 전시를 기획한 마틴 가서 스위스 빈터투어사진미술관 공동관장은 “불세출의 작가이지만 작가적 면모는 의외로 별반 알려진 게 없는 로버트 프랭크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프린스턴 대학)을 쓰면서 그와 25년간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며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을 포착하려 한 작가다. 눈이 아닌 가슴으로 보려했고, 이면을 보고자 했다. 미국의 여러 측면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의 새로운 측면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미국인’시리즈는 의미가 크다”고 했다. 

Trolley, New Orleans, Gelatin silver print, 30.6ⅹ48.5cm,1956 ⓒRobert Frank [사진제공=한미사진미술관]

걸작 시리즈 ‘미국인’이후 뜻밖의 사고로 딸을 잃은 로버트 프랭크는 그 비극적 사건으로 인해 더욱 반역적이고, 실험적인 작가가 됐다. 독립영화 제작에 뛰어들어 추상과 현실이 뒤섞인 영화를 만들었다. 1970년대초 사진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스트레이트 사진이 아닌, 인화지에 글자를 써넣는 포토몽타주 작업 등 보다 전위적인 사진작업을 시도했다.

한편 이번 전시에는 로버트 프랭크가 유럽을 돌며 찍은 사진들도 포함됐다. 영국 런던에서 찍은 1951년 무렵의 풍경사진은 더없이 감성적이다. 안개가 뽀얗게 낀 런던 공원을 걷는 신사의 모습은 한편의 몽환적인 시(詩)다. 반면에 제의를 주관하며 모여든 정치인사들의 하반신만 찍은 사진 등 ‘미국인’ 시리즈의 탄생을 예고하는 ‘씨앗’에 해당되는 사진들도 내걸렸다. 전시작 중에는 책자 등에 공개되지 않은 사진도 포함돼 관심을 모은다.

City Fathers, Hoboken, New Jersey, Gelatin silver print, 24.7ⅹ33.7cm,1955 ⓒRobert Frank [사진제공=한미사진미술관]

한미사진미술관측은 이번 전시에 발맞춰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프랭크의 사진 19점이 수록된 사진집도 발간했다. 전시는 내년 2월 9일까지. 성인 6000원. 02)418-1315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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