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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5년 몸으로 지켜온…필화사건을 말하다
1965년 가을, 작가 남정현의 단편소설 ‘분지’가 반공법 위반으로 수사대상에 올랐다. 1965년 3월호 ‘현대문학’에 발표한 소설이 반미ㆍ용공으로 몰려 남 씨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발표 당시에는 아무말 없다가 나중에 북한의 기관지 ‘조국통일’에 전재되자 문제 삼은 이 사건은 유죄판결을 받았다. 당시 증언에 나선 이어령 교수의 말은 압권이었다. 당시 검사가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놀랐는데, 증인은 용공적이라고 보지 않았는가”라고 묻자, 이 교수는 “나는 놀라지 않았다. 병풍 속의 호랑이를 진짜 호랑이로 아는 사람은 놀라겠지만 그것을 그림으로 아는 사람은 놀라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겼다. 이 사건은 한승헌 변호사가 맡은 첫 번째 시국사건이었다. 한 변호사는 정해놓은 각본과 상고심의 보수적 경향 탓에 상고를 아예 포기했다고 최근 펴낸 ‘권력과 필화’(문학동네)에서 털어놨다.

권력과 필화
한승헌 지음
문학동네
이 책은 한 변호사가 문학예술의 표현의 자유를 지켜내고자 싸워온 55년간의 기록으로 총 17건의 사건 개요와 재판 기록을 담았다.

허병섭 목사가 노래가사 바꿔부르기 곡을 모아 비매품으로 만들어 배포한 ‘노동과 노래’의 책 저작권 문제, 동백림 사건에 연루된 천상병 시인의 코미디 같은 공소사실들, 88년 민주화분위기를 타고 북한역사서 출판 붐 속에 북한판 ‘조선전사’를 출판했다가 반국가행위로 몰린 출판인 강병선의 이야기 등 어이없는 실화와 문단 뒷얘기가 통증을 남긴다.

저자가 필화사건을 변론하는 시각은 한결같다.

“가령 객관화된 작품의 평가나 영향에 관하여 작자의 창작의도와는 관계없이 상반되는 두 견해가 나올 수 있다 하더라도 상대주의 철학을 전제로 하는 민주체제 아래서는 이질적인 것의 공존이 당연한 만큼 누구에 의해서도 적대시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문학예술의 본질에까지 나아간다. 현재적 질서와 권위에 집념하는 권력과의 상충은 문학예술의 숙명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란 것이다. 법의 양식에 기대어 사회의 정상적이고 평균적인 눈으로 사안을 들여다보려는 인간적ㆍ균형적인 법에 대한 저자의 태도는 기준이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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