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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약탈 금융’을 위한 옹호
“금융은 인간이 만든 미완의 발명품
지금의 경제위기는 기관 탓만 아닌
잘못된 시스템 운용이 근본적 문제”

월가 대표적 비관론자 쉴러 교수
금융업 관련자들 역할·현실 재조명
모럴해저드 질책·금융본질 이해도와


새로운 금융시대
로버트 쉴러 지음
RHK
‘좋은 금융’ ‘인간의 얼굴을 한 금융’이란 말은 가능할까.

금융이란 말만 들어도 화가 치미는 이들은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할지 모른다.

이런 말을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쉴러 예일대 교수가 했다면 얘기는 다르다. 월가의 대표적인 비관론자이자 2000년 ‘이상과열’이란 책으로 IT 열풍의 거품을, 2006년에는 당시 상승세를 타던 부동산 가격의 심각한 거품을 지적했던 그는 금융현상의 왜곡을 누구보다 예리하게 포착해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쉴러 교수는 최근 저서 ‘새로운 금융시대’(RHK)에서 금융위기 이후 들먹이는 것조차 불쾌한 지경에 이른 금융을 끄집어내 새롭게 조명한다.

그의 지론은 금융자본주의는 인간의 발명품이고 아직 미완성이며 더 민주적이고 더 인간적인 금융시스템이 우리 삶에 폭넓게 스며들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금융은 결코 돈을 빼앗는 약탈자가 아니며 인류문명을 진보시킨 주체이고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금융의 잘못된 운용이 문제이지 금융의 본질과 목적은 여전히 희망적이라는 얘기다.

그에 따르면 본래 금융은 초창기 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금융(finance)의 어원은 ‘finis’에서 왔는데, ‘목표’를 의미한다. 이는 금융이 단순히 ‘돈을 버는 기술’이라기보다 ‘어떤 목표를 이루는 수단’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그에 걸맞게 금융은 산업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시장의 리스크를 일정부분 흡수하며 산업혁명, 최근의 정보디지털 시대를 앞당기는 데 기여해 왔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접 원인인 모기지(주택 담보대출)도 원래 유동화를 통해 대출금을 조기에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주택 구입자에게 대출을 해주려는 목적이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집값 상승에 대한 잘못된 예측 및 과도하게 낙관적인 신용평가의 문제이지, 모기지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위험 투자상품이라는 인식이 강한 주식이나 채권도 다른 면에서는 기업에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경제를 활성화한다. 펀드 또한 사회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자금을 제공해준다는 설명이다.

“금융이 태생적으로 혹은 독점적으로 엘리트들의 세계이며, 경제 불평등의 엔진이라고 규정짓고 이쯤에서 손을 놓아야 하는 걸까? 금융에는 분명 빈틈이 존재하고 과도한 면이 있지만 더 풍요롭고 더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도록 도울 잠재력도 지니고 있다.”

쉴러 교수는 금융을 자동차 설계시스템과 고속도로에 비유한다.이를 테면 자동차 설계자들은 새로운 기술, 크루즈 컨트롤이라든가 외부 자동 피드백 등을 이용해 도로 교통을 원활하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궁극적으로 인간이 핸들을 잡을 필요가 없는 자동 운전 차량을 대중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금융에 대한 미래 인식도 이렇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총 2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기업을 이끄는 CEO부터 자산운용사, 보험회사, 로비스트, 정책결정자에 이르기까지 금융업 관계자들의 역할과 책임, 행위규범 등을 소개하고 2부에서는 금융발전을 가로막는 요소들을 하나하나 짚어간다.

저자가 금융업 관련자들의 역할과 현실을 재조명한 것은 두 가지 목적으로 풀이된다. 당사자들이 책무를 무겁게 느끼도록 하는 동시에 이들의 긍정적 역할을 객관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금융의 본질을 이해하도록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다. 가령 트레이더의 경우 흔히 이들은 그저 주식을 사고팔며 돈을 버는 도박사처럼 여겨지지만 어떤 시장에서든 상품을 계속 사고파는 사람들이 있어야 시장의 유동성이 유지된다.

시장설계사는 최근에 주목받는 분야. 인간이 겪는 문제들에 대해 시장을 통한 해법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며 201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하버드대 앨빈 로스 교수가 대표적인 예다. 그는 금융공학의 알고리즘을 통해 신장이식이 필요한 환자와 신장기증자를 연결해주는 시장 모델을 개발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

저자는 좋은 사회를 달성하기 위해 금융이 할 수 있는 순기능을 하나하나 열거해 나간다. 빈민과 여성 소자본 창업자금을 지원하는 그라민은행은 금융 민주화의 대표적인 예. 그는 금융민주화를 위해선 일반 시민이 다양한 정보와 자원에 접근하고 금융시스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그 기회를 현명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의 금융옹호론은 최근 동양증권 사태를 경험한 우리에게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이는 저자의 표현을 따르면 여전히 금융의 민주화와 인간화가 덜된 탓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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