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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오페라단 라보엠...가난한 청춘들의 슬픈 사랑 이야기, 명가사에 담긴 애절함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랑은 슬픈 종말을 가져오죠!”

”상처를 회복할 줄 모르는 사랑은 나약해서 다시 살아날 수 없는 죽은 사랑이에요!”

추운 겨울, 집세가 밀리고, 방을 데울 땔감도 없고, 주머니가 비어 있어도, 뜨거운 사랑과 정열 하나만 있으면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게 젊음이요 청춘이다. 가난하지만 꿈 많은 청춘들의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담은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이 국립오페라단에 의해 5일 다시 무대에 올려진다.

작품의 배경이 크리스마스 이브로 매년 연말만 되면 전세계에서 공연되는 라보엠은 <토스카> <나비부인>과 함께 푸치니의 3대 걸작으로 꼽히는 오페라의 고전. 작품에 나오는 ‘그대의 찬 손’, ‘내 이름은 미미 ’, 이중창 ‘오! 아름다운 아가씨’ 등 주옥 같은 아리아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세계인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해 국립오페라단은 창단 50주년을 기념해 라보엠을 무대에 올려 전석매진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긴 바 있어, 이번에도 신화를 이어갈지 주목된다.

이번 오페라 <라보엠>은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연출가 마르코 간디니가 연출한 작품을, 떠오르는 한국의 신예 연출가 정선영이 재연출한 작품이다. 독특한 무대연출과 보헤미안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정서를 치밀하게 표현했다는 평이다.

지휘는 깊이 있는 해석과 정교한 테크닉을 겸비한 지휘자 성기선이 맡았다. <마술피리> <피가로의 결혼> <헨젤과 그레텔> 등의 오페라 지휘자로도 활발히 활동해온 성기선은 색채감 있는 오케스트레이션으로 감성적 몰입도를 높인다.

차세대 한국 성악가들의 아리아 향연도 주목된다. 시인 청년과 가난하고 연약한 연인의 가슴 아픈 사랑을 노래하는 ‘로돌포’와 ‘미미’ 역에는 테너 정호윤과 소프라노 홍주영, 테너 양인준과 소프라노 조선형이 호흡을 맞춘다. 테너 정호윤은 유럽 무대의 한국 로돌프로 잘 알려져 있으며, 소프라노 조선형은 지난 4월 국립오페라단 주역 오디션에서 발탁된 신예 성악가로 탁월한 가창력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변덕스러운 커플 ‘마르첼로’와 ‘무제타’는 바리톤 오승용, 소프라노 김성혜와 양제경이 맡는다. 여기에 ‘쇼나르’의 바리톤 김진추, ‘콜리네’의 베이스 임철민과 김철준 등이 가세해 파리 보헤미안 예술가들의 낭만적인 순간을 그려낸다.

정선영 연출가는 “따뜻한 사랑의 온기가 필요한 겨울에 뜨겁게 뛰는 심장을 느끼고 위안과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작품”이라며 “오늘날 젊은이들의 처지가 <라보엠>의 이야기가 다르지 않은 만큼 자신의 이야기로 투영해서 감상하면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연출가는 또 “작품의 주요 무대가 심장박동소리까지 느낄 수 있는 좁은 다락방이지만 이를 가운데 배치하지 않고 구석에 배치해 궁핍한 회색의 공간으로 만들었다”며 “불안정하고 덧없는 청춘과 이들의 아름다운 사랑과 미미의 죽음을 관객들에게 입체적으로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은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5일부터 8일까지 4일 동안 5차례 열린다. (문의 02-586-5284)



▶라보엠은 어떤 작품=<라보엠>은 앙리 뮈르제의 소설 <보헤미안들의 인생풍경>을 바탕으로 작곡된 전 4막의 오페라로 19세기 파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꿈과 사랑과 환상을 갈망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사랑이 푸치니 음악의 화려하고 감성적인 선율과 풍부한 시적 정서, 색채감 있는 관현악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난한 예술가들과 학생들이 주로 거주하는 서민적인 동네인 파리의 라틴지구. 한 건물 다락방에 예술과 시를 사랑하지만 주머니는 가난한 네 명의 청년이 함께 기거하고 있다. 시인 로돌프, 화가 마르첼로, 철학자 콜리네, 음악가 쇼나르다. 방세가 3개월치나 밀려있고 난방을 못해 추위에 떨지만, 밝고 쾌활한 청춘들이다.

파리가 온통 들뜬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던 크리스마스 이브, 로돌프는 촛불을 얻기 위해 다락방에 올라온 가난하고 병약한 처녀 미미를 만나고, 둘은 한눈에 사랑에 빠져버린다. 이들은 사랑의 설레임을 담은 아리아를 주고받으며 사랑의 기쁨을 노래한다. 로돌프와 미미는 흥성거리는 파리의 거리로 나가 또다른 연인인 마르첼로-무제타와 함께 어울려 네 남녀가 유쾌하면서도 애잔한 사랑을 노래한다.

하지만 젊음의 사랑은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질투와 의심, 애증으로 결국 이별로 끝나고 만다. 세월이 흘러 병든 미미는 다시 로돌프를 찾아오자 다시 사랑이 불타오른다. 하지만 약을 살 돈도 없는 젊은이들의 낡은 하숙방에서 로돌프와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미는 숨을 거두고 이들의 행복했던 청춘이 흘러간다.

▶라보엠에서 빠뜨릴 수 없는 명가사=라보엠에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꿈, 환상과 이별의 슬픔을 담은 주옥같은 대사가 곳곳에 등장해 감동을 전해준다.

다락방에서 가난한 청춘들이 노래하는 자신들의 이야기는 시 그 자체다. 로돌프는 너무 추운 나머지 벌벌 떨면서도 이를 재치있게 노래한다. “저 회색 빛 하늘에 수많은 파리의 굴뚝들이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데... 게을러빠진 우리 난로께서는 자신이 무슨 귀족인 양 아무일도 안 하고 빈둥빈둥 놀고 계시네.”

“사람 이마에 땀이 난다는 얘기를 도무지 믿을 수가 없네.”

로돌프가 다락방으로 촛불을 찾아 올라온 미미와 만나 창백한 얼굴을 들여다보고 손을 잡으며 부르는 ‘그대의 찬 손’은 아름답고 서정적인 서사시다.

“손이 무척이나 차갑군요! 제가 따뜻하게 녹여드릴게요!...어떻게 사느냐구요? 이렇게 살죠! 가난하지만 귀족처럼 풍요롭게... 시와 사랑의 노래들을 마음껏 쓰며 살아요! 꿈과 환상들... 그리고 상상 속에 멋진 성을 갖고 있죠. 나의 마음은 이렇게 백만장자예요. 한 순간...내 마음의 보물상자는 아름다운 두 눈동자에 의해 그 보물을 모두 도둑질당하고 말았어요. 당신이 들어온 순간, 내가 갖고 있던 꿈들, 그 아름답던 나의 꿈들은 사라져버리고 말았어요....하지만 그건 아무렇지도 않아요. 왜냐하면 이제 내게는 새로운 희망이 있기 때문이죠....”

로돌프의 노래에 미미는 ‘나의 이름은 미미’로 불리는 노래로 화답한다.

“사람들은 저를 미미라고 불러요! 그 이유는... 저도 몰라요... 혼자... 늘 혼자서 지내요. 하얗고 조그만 저의 방에서 창 밖의 지붕들을 바라보아요. 그리고 그 너머로 하늘을...! 하지만 언젠가 저 눈이 녹고 나면... 떠오르는 처음 태양은 저의 거예요! 사월의 첫 입맞춤은 저의 것이에요! 그 처음 태양은 바로 저의 거예요!...”

사랑에 빠진 둘은 이어 ‘사랑의 이중창’으로 사랑의 감미로움을 노래한다.

“오! 아름다운 아가씨! 달빛이 그대의 아름다운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고... 나는 이제야 그대에게서 찾게 되었소! 이제까지 꿈꾸어 왔던 나의 꿈을! 감미로운 사랑의 설레임이 영혼을 사로잡고...”(로돌프)

“아! 사랑!...나를 온통 사로잡고...그의 속삭임들이 내 마음에 감미롭게 내려오네.”(미미)

크리스마스 이브의 왁자지껄한 거리로 나간 로돌프는 사랑의 행복을 노래한다.

“우리가 왔네. 자! 이쪽은 미미! 아름다운 꽃을 만드는 아가씨라네. 이 아가씨가 함께 있으므로 해서 이제야 모든 것이 완벽해졌네. 왜냐하면 난 시인이고, 이 아가씨는 시이기 때문일세. 내 머릿속에서는 시들이 피어나고, 그녀의 손에선 꽃들이 피어난다네. 우리의 즐거운 마음에서는 사랑이 피어난다네.”

하지만 사랑의 기쁨은 점차 사라지고, 이별의 아픔과 재회, 다시 찾아온 사랑, 가엾은 미미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아리아 하나하나가 명가사로 감동을 배가시킨다.

이해준 기자/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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