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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란 선임기자의 art&아트> 자연에 이름을 불러주자…나무, 말을 걸어오다

이명호 작가 갤러리현대서 사진전
전세계 곳곳에 거대한 캔버스 설치
예술에 대한 지난한 해답찾기 몰두

숭례문 프로젝트 불발 아쉬움
파리 개선문 등 앵글 작업 지속 추진

 

지금은 세계가 주목하는 사진작가가 됐지만 이 작가의 꿈은 등대지기였다. 중앙대 사진학과에 입학했으나 사진보다는 어두운 밤바다를 밝혀주는 등대지기에 더 끌렸던 것. 그래서 전국에 산재한 유인등대원 40여명에게 일일이 손편지를 띄웠다. 등대원들은 대부분 답장을 보내왔지만 사람이 지키는 유인등대의 숫자가 자꾸 줄어드는 바람에 청년은 꿈을 이룰 수 없었다. 결국 지도교수의 권유로 대학원에 진학했고, 다시 사진에 눈을 돌리게 됐다.

등대지기를 꿈꾸다가 이제는 ‘나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사진 프로젝트로 스타 작가가 된 이는 이명호(38ㆍ경일대 교수·작은 사진)다.

중앙대 사진대학원에 진학한 이명호는 한동안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부여잡고 있었다. 어느 날 ‘예술가=캔버스를 앞에 놓고 고뇌하는 사람’이란 등식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는 캔버스를 억지로 채워 넣는 대신, 자연 앞에 캔버스를 세우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 순간 캠퍼스에서 무심히 마주쳤던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가 그에게 말을 걸어왔고, 높이 12m에 달하는 대형 캔버스를 나무 뒤에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그랬더니 그것이 곧 ‘작품’이 됐다. 2004년에 시작한 첫 작업 이래 사진작가 이명호는 전 세계 곳곳에 거대한 캔버스를 설치하며, ‘오늘 이 시대에 예술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 답을 찾아가고 있다. 이명호가 오는 12일부터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본관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숨가쁘게 이어져 오던 해외에서의 작품전 이후 3년 만에 갖는 국내 개인전이다. 타이틀은 ‘사진-행위 프로젝트: 밝은 방, 어두운 방’. 1층의 밝은 방에는 ‘나무’ 연작이, 2층의 어두운 방에는 사막 풍경을 담은 ‘바다’ 연작이 내걸렸다. 

몽골의 초원에 외롭게 서 있는 나무들 뒤에 대형 캔버스를 설치한 뒤 이를 찍은 이명호의 퍼포먼스 프로젝트 사진‘ Tree...#4. 2013’. [사진제공=갤러리현대]

‘나무’연작은 그에게 명성을 안긴 대표작이다. 너른 광야에 외롭게 서 있는 나무 뒤편으로 사각의 흰 캔버스를 세우곤 그 ‘나무’를 찍은 연작은 많은 설명이 필요 없는 작업이다. 지평선을 가르며 서 있는 나무로 하여금 모든 걸 말하게 하는 이명호의 사진은 그 어떤 회화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그루의 나무 자체를 온전히 드러내는 맑은 사진들은 무한한 정서를 전해 준다. 또 흰 캔버스에 나무를 고스란히 표현했다는 점에서 그의 나무 연작은 자연의 ‘재현’이라 할 수 있다.

‘어두운 방’에 내걸린 사막 사진은 정반대의 매력을 드러낸다. 개념 또한 정반대다. 나무 연작이 온전한 현실을 드러낸다면, 사막 연작은 신기루와 같은 비현실을 만들어낸다. 어머니의 젖무덤처럼 포근한 사막에 오아시스를 조성한 사진들은 더없이 장대하면서도 섹시하다.

이명호는 몽골의 고비 사막, 이집트의 아라비아 사막, 러시아 툰드라 초원에 엄청난 크기의 캔버스를 바닥에 드리우고 사진을 찍었다. 하얀 캔버스를 ‘바다’ 또는 ‘오아시스’로 설정한 콘셉트가 흥미롭다.

이명호는 “사막을 다니면서 내 작업의 폭이 넓어졌다. 특히 몽골의 울란바트로를 출발해 3200km를 달려 도달한 러시아 툰드라의 거대한 바위는 꼭 작업하고 싶다. 가로가 200m나 되는 만큼 쉽지 않겠지만 그 이름 없는 바위에 꼭 이름을 부여하고 싶다”고 했다. 최근 시도했던 숭례문 프로젝트가 약간의 시행착오로 불발에 그쳤지만, 파리의 개선문 등 세계의 문화유산을 찍는 작업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이명호의 사진은 폴 게티 미술관(로스엔젤레스), 기요사토 사진 미술관(기요사토), 덴마크왕립도서관(코펜하겐) 등의 기관에 소장돼 있다. 전시는 내년 1월 5일까지.
 

(02)2287-3575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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