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백건우가 프란츠 리스트의 ‘새들에게 설교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8분간 연주하면 무개차에 올라탄 프란치스코 교황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오전 4시부터 광화문~시청광장의 야외 식장으로 입장해 기다린 17만2000여명의 전국 천주교 신도들과 그 주위로 늘어선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제단과 제대까지 1.2㎞ 거리를 무개차로 행진한다.
성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대로 올라 ‘인 노미네 파트리스, 엣 필리 엣 스프리투스 상티’(In nómine Patris, et Fílii, et Spíritus Sancti.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라고 외우는 기도문에 신도들이 ‘아멘’으로 화답하면 비로소 예식이 시작된다. 이날 실시간으로 KBS와 CNN 등으로 전세계에 생중계될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는 교황 방한 일정의 ‘하일라이트’로 꼽힌다.
‘가난한 이들의 벗’이라는 애칭을 가진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체류 일정은 4박 5일 총 100시간 동안 이루어지며, 서울과 대전 등 1000㎞이상을 이동하는 여정으로 구성된다.
방한 일정은 교황이 전용기편으로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발을 딛는 14일 오전 10시30분부터 시작된다. 처음 가는 곳은 숙소인 청와대 인근의 주한교황청대사관이다. 4박 동안 묵을 방은 요한 바오로 2세가 1984년과 1989년 두 차례 한국을 찾았을 때도 지내던 곳으로 현재 방주인인 주한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의 침대와 옷장을 그대로 쓸 계획이다. 이날 오후 청와대를 예방해 박근혜 대통령을 면담하고 주요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연설한다. 이어 중곡동의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한국천주교 주교단과 직원들을 만난다.
15일은 아침 일찍 청와대 제공 전용헬기로 충남·대전 지역으로 이동,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천주교 신자들과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 등이 참석하는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한다. 대전가톨릭대에서 아시아청년대회 각국 대표들과의 오찬, 당진 솔뫼성지에서 아시아 청년대회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 등도 예정됐다. 16일에는 방한 최대 행사인 광화문에서의 시복식과 충북 음성의 꽃동네 방문이 이루어진다. 17일엔 충북 해미 순교성지와 해미읍성에서 각각 아시아 주교들과의 만남 및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미사 집전이 있다. 방한 마지막 날인 18일에는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한다. 이어 낮 12시45분 서울공항에서 간단한 환송식을 끝으로 방한 일정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알려진 일정 외의 ‘깜짝 행보’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 있다. 중동 순례에서 역시 가던 차를 멈추고 예정에 없던 행보를 보여줬던 만큼 이번 방한에서도 예고 없는 방문이나 만남이 이뤄질 가능성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한편, 교황 즉위 이후 세계적인 화제가 됐던 대로 한국에서의 일정도 철저히 ‘낮고, 작고, 가깝게, 검소하게’로 맞춰져 있다. 헬기 이외의 육상교통편은 국산 소형차인 쏘울을 이용하며, 광화문 미사와 음성 꽃동네 방문시 카퍼레이드를 위해선 국산차를 개조한 무개차가 준비됐다. 국내 한 가구회사가 숙소에 새 침대를 기증할 의사를 밝혔지만 거절했다는 후문이다. 식사 역시 공식 일정에 있는 두번의 오찬을 제외하고는 모두 숙소인 주한교황청대사관의 식당에서 평소 식단대로 할 예정이다. 아시아청년대회 대표단과의 오찬간담회 메뉴로는 숯불갈비와 갈비탕이 준비됐다. 미사에서 교황은 라틴어로 집전하며 강론은 이탈리아어로 한다. 다만 아시아청년대회 폐막미사에서는 젊은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영어로 강론한다. 광화문과 명동성당에서 이루어지는 미사에서 착용할 제의는 붉은 색과 흰 색으로 각각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와 재개발산동네 주민들로 이뤄진 봉제생산협동조합 솔샘일터에서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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