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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을 맛보다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일본에서는 무려 천년 넘게 소와 닭 등 주요 육식이 금지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스시가 원래 생선 젓갈로부터 유래했고, 초밥의 신맛은 그 흔적이라는 사실은?

맛으로 본 일본문화 이야기, 문화로 본 일본 음식이야기를 담은 책이 새로 출간됐다. 일본 근무 경험을 바탕삼아 쓴 현직 외교관의 저서 ‘맛으로 본 일본’(박용민 지음, 헤이북스)이다. 저자는 묻고 답한다. “일본 음식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답을 제일 잘할 수 있는 건 한국 사람이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는 비슷하면서도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 속에 있지도않고, 아예 멀리 있지도 않은, 지리, 문화, 역사적으로 ‘딱 한 걸음’만 떨어져 있는 처지가 일본 문화, 일본 음식에 대해 오히려 더 잘 볼 수 있고, 더 잘 느낄 수 있게 했다는 말이다. 덧붙이자면, 이 책의 저자는 일본 문화나 요리의 전문가가 아니다.하지만 2년간 한국 외교부에서 파견돼 주일본한국대사관에서 일했으니 여느 사람들보다는 ‘일본통’이라 할 것이다. 직업 특성에 따라 고위직부터 식자층,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본인들과 최고급에서 여염집 식사까지 갖가지 일본 음식을 경험했을테니 일식에 관한한은 ‘미식가’라 할만하다. 절반은 프로페셔널, 절반은 아마추어인 저자가 쓴 일본 음식 에세이인 셈이다. 일본 음식의 유래와 여기에 얽힌 역사의 뒷얘기, 일식 요리법과 그것을 통해 본 일본인들의 습속을 조근조근 들려준다. 도쿄의 주점과 전국 각지 음식의 순례기도 더했다. 

맛으로 본 일본/박용민 지음/헤이북스

일본의 대표적 음식들을 꼽는 것으로 책은 시작된다. 일본식 정찬인 가이세키요리(懷石料理가 가장 먼저 식탁에 올랐다. 보통 전채-계절요리-생선회-데친 채소ㆍ고기ㆍ두부 요리-국물-생선 등 구이류-초절임 채소-주요리-밥-디저트 등이 이어지는 코스요리다. 저자는 현대 한국 음식의 주류를 이루는 짙고 풍성한 맛과 달리 가이세키요리는 지나칠만큼 담백하고 싱겁다고 한다. 가이세키의 기원은 다도에 있고, 원래는 선승들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 따듯한 돌을 품에 안고 수양을 했던 데서 비롯된 명칭으로, 다회에서 차와 함께 제공하는 간단한 식사를 가리키던 말이었다. 그러던 것이 중국 당나라에서 유입된 귀족들의 의례용 다이쿄요리, 그 영향을 받아 관혼상제용 식단으로 발전한 혼젠요리, 식물성 재료를 주로 사용하는 사찰음식인 쇼진요리, 중국에서 유래한 사찰음식 후차요리, 중국식으로 식탁 위에 식탁보를 펼쳐두고 먹는 음식이라는 뜻의 싯포쿠요리, 에도시대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과 교류를 하며 생겨난 남방요리 등이 영향을 미치며 오늘날 푸짐한 정찬이 됐다. 


저자는 이 가이세키 요리에서 일본 음식과 문화의 특성을 뽑아내는데, ‘양식화’와 압축적 긴장감, 찰나적ㆍ즉물적 쾌락주의 등이 그것이다. 백흑녹적황의 오색과 단맛, 짠맛, 쓴맛, 신맛, 매운맛, 감칠맛 등의 육미, 구이, 조림, 찜, 튀김, 회가 차례로 놓여지고, 봄에는 벗꽃 문양, 가을에는 단풍 모양의 그릇 등 계절을 나타내는 그릇에 계절 요리를 담아내는 데서는 정해진 규약을 통해 상징적 의미를 압축시키는 양식화의 극단을 보여준다. 입으로 들어가고 말 음식을 한 접시에 손가락만큼씩 담아내고 세밀화 그리듯 장식해 내놓는 데는 일본 문화 특유의 압축적 긴장미와 찰나적ㆍ즉물적 쾌락주의가 바탕에 깔렸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저자의 통찰이 흥미롭다. 


“한정식이 풍성하게 차려놓은 밥상 위로 손님의 손이 자유롭게 오가게 만든 밥상이라면, 가이세키요리를 먹는 손님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의도에 순종한다. 일본의 정원이 자연을 인위적으로 양식화한 것과도 같은 원리이고, 다도의 다실로 가는 길 위에 듬성듬성 깔아놓은 돌로 인해 손님의 보폭이 미리 결정되는 것과도 흡사하다. 가이세키요리를 먹는 것은, 음식을 만든 사람과 먹는 사람 사이에 고도로 양식화된 의사소통을 나누는 일이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식으로 꾸며서 서빙하기만 하면 서양 치즈나 푸아그라, 샤프란 따위의 외래 식재료도 가이세키의 한 접시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자세히 설명했지만, 이는 오스트리아의 슈니첼과 그것의 변형인 ‘포크 커클릿’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만들고 소스를 개발해 ‘돈가스’로 만들고, 오믈렛을 ‘오무라이스’로, 커리를 ‘카레라이스’로 토착화시킨 일본인들의 혼성 모방과 재창조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독자로 하여금 절로 들게 만든다. 


돈가스와 오무라이스, 카레를 포함해 빵과 케이크 등 디저트의 발달도 모두 메이지유신으로 상징되는 근대화, 개방화를 계기로 이루어졌다. 


19세기 중후반의 메이지유신은 일본 음식 문화에 실로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때 비로소 육식이 허용된 까닭이다. 일본에서는 675년 불교의 영향을 받은 덴무덴노(덴무 천황)가 칙서를 내려 소, 말, 개, 원숭이, 닭 등 다섯 종류 동물의 살생과 식육을 금했고 이는 1200년간이나 계속됐다. 육식금지령은 7세기 중반 이후 신라에 패망한 백제 유민들이 대거 일본으로 유입되면서 그들을 경계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학설도 저자는 소개했다. 백제인들은 선진 목축 기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육고기 섭취가 어려웠던 사정은 생선 요리의 발달을 가져왔다. 그 중에서도 일본 생선 요리를 대표하는 스시의 경우엔, 원래 절인 생선, 즉 젓갈 요리였다. 그러나 18세기 식초양조법의 발달로 발효된 생선의 신맛을 식초가 대신했고, 1820년대에 와서는 ‘날생선+초밥’의 형태가 이루어졌다. 


이 밖에도 스키야키와 샤부샤부, 덴푸라, 벤토(도시락), 장어와 미꾸라지 요리, 고래고기요리, 새해 음식인 오세치, 가쓰오부시 등의 유래와 역사, 전통맛집 등이 소개했고, 우동ㆍ소바ㆍ라멘 등 일본의 다양한 국수요리 이야기도 담았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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