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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석의 디지털 36.5℃〕페이스북에서 날아온 죽은이의 생일알림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

▲페이스북에서 날아온 죽은이의 생일알림

최근 페이스북으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한 지인의 생일알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고인이 된 사람, 세상에 없는 이였습니다. 1년전, 비보에 빈소를 찾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장례식장의 풍경이 아직도 선명한데, 혹시나 내가 다른 이로 착각한 것은 아닌지, 메일로 연결된 페이스북으로 찾아 들어갔습니다. 보고 싶다는, (생전에) 사랑했었다는 글이 올라와 있더군요. 고인의 어떤 친구는 아마도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는지 반가운 생일 축하메시지도 써 놓았습니다. 사진 속 생일 주인공은 여전히 웃고 있었습니다. 그는 과연 자신이 이런 식으로 추억되기를 바랐을까요? 자신의죽음과는 상관없이 ‘페이스북’의 연결망 속에서 여전히 웃고 있고, 여전히 생일을 맞는 사람으로 존재하기를 원했을까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망자의 문자메시지, 사랑의 증명서로 남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벌써 10년도 넘은 일입니다. 한 젊은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망자의 죽음을 두고 여러 추측들이 나왔습니다. 고인과 생전 평소에 가깝게 지냈다는 한 남자의 이야기도 인구에 회자됐습니다. 그러자 남자는 고인이 생전 보냈던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뭇사람들에게 꺼내보이며 ‘사랑’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고인은 생전 단 한 사람을 위해 보냈던 문자메시지가 세상에 보여주는 사랑의 증명서가 되기를 바랐을까요? 그 또한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은 이제 바뀌어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은 짧고예술은 길다는 말도 말입니다. 사람은 죽어서 데이터를 남기고, 예술은 길지만 데이터는 영원하다고 말입니다. 액자 속에 든 다빈치의 모나리자 보다는 모나리자를 찍어 클라우드에 보관한 사진 파일이 아마도 더 오래갈 것입니다. 

▲잊혀질 권리

데이터의 폭주시대가 잊은 것은 ‘잊혀질 권리’였다고 최근 논의들은 말합니다. 잊혀질 권리란, 자신이 원치도 않는 사적인 정보가 온라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기록으로 남거나, 공개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사용자가 사망했을 경우 관련 데이터를 삭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죽은이의 경우에는 유족들이 수정이나 삭제를 요청하겠지요.

꼭 죽은 이가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지우고 싶어하는 기억이 있습니다.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과거의 행적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했던 말실수같은 사소한 것으로부터 사랑했던 누군가와 헤어졌던 아픈 추억, 예전 회사에서 받았던 나쁜 평점, 심지어는 범죄나 처벌 경력에 이르기까지 말이죠.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라면 오래 전 불상사로 보도된 기사도 지우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온라인에 한번 오른 데이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원본은 무한대로 복사될 뿐더러 마모되지도 소멸되지도 않습니다. 칼자루는 망(네트워크)이나 플랫폼, 소프트웨어를 소유하고 운영하는 자에게 쥐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유럽연합을 필두로 해서 세계 각국에서는 ‘잊혀질 권리’에 대한 법제화 논의가 활발합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넘어서야 할 장벽이 많습니다. 표현의 자유나 알 권리와 충돌할 수 있습니다. 원본을 지운다고 해도 무한대로 복사된 데이터를 한꺼번에 지울 수 없는 기술적 어려움도 있습니다. 어떤 데이터를 어떤 방식으로 삭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준도 현재는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잊혀질 권리의 첫 승리

잊혀질 권리의 법제화에 가장 앞선 곳은 유럽 연합입니다. 지난 2012년 ‘잊혀질 권리’를 명문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보보호규칙(Regulation)을 제안하고 법제화를 추진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잘 알려진 것처럼 지난해 5월 유럽 사법재판소가 처음으로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는 판결을 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스페인의 변호사인 마리오 코스테하 곤잘레스라는 지난 2010년 어느날 구글에서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던 중 2년전인 1998년 스페인 유력지 라 뱅가르디아의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그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인 당시에 연금을 제때 내지 않아 집이 경매에 처해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곤잘레스는 신문에 게재된 기사와 구글 검색 링크가 자신의 프라이버시 권리를 침해했다며 삭제해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구글과 신문사측은 거부했습니다. 곤잘레스는 스페인의 정보보호위원회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스페인 당국은 신문사의 기사에 대해선 법적으로 문제 없다고 기각했으나 구글 링크에 대해서는 삭제를 지시했습니다. 이에 대해 구글이 불북하고 소송을 제기하자 유럽 사법당국이 스페인 이용자의 정보 삭제 요청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던 것입니다. 이후 구글을 비롯한 각종 검색 엔진에는 개인정보 삭제 요청이 급증하고 있다고 합니다.

▲잊혀질 권리의 장벽

하지만 구글과 페이스북, 위키피디아 등 주요 검색 및 SNS 기업들이 있는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개인의 프라이버시보다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 유럽 연합이 추진 중인 잊혀질 권리의 표준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분위기입니다.
유럽식의 기준을 받아들였다가는 당장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기업들이 줄소송을 당해야 할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데이터가 곧 최대의 자산이자 기술 동력인 빅데이터의 시대에 ‘개인 정보 수집’을 포기할 수 없다는 기업의 이해이겠지요. 사용자들로부터 얻는 데이터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모든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의 ‘엔진’이자 ‘연료’이고 미래의 생존과 사활을 좌우할 자원이기 때문입니다. 데이터가 곧 기술이고 돈이며 자산입니다.

망자의 잊혀질 권리로 다시 돌아가자면 최근 신조어 가운데는 디지털 장의사라는 눈에 띕니다. 온라인 상에 올라가 있는망자의 개인정보를 정리해주는 서비스를 일컫습니다. 클라우드 저장창고에 저장된 고인의 디지털 정보를 사후 유족이 삭제 및 관리하는 서비스 시큐어세이프가 대표적이죠. 잊혀질 권리가 부각되면서 구글은 망자의 계정을 삭제할 수 있는 휴면계정관리서비스를 도입했습니다.

▲데이터에 자연사를 허하라

그러나 가장 타당해보이는 것은 데이터에 ‘자연사’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한 사람으로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빅토르 마이어 쇤베르거가 꼽힙니다. 지난 2009년 저서 ‘삭제: 디지털 시대, 망각의 미덕’이라는 책에서 잊혀질 권리에 대한 문제를 전면에 제기했습니다. 그는 정보 생성시에 만료일을 지정하는 방법으로 ‘잊혀질 권리’를 보장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말하자면 데이터의 출생과 동시에 생존 기한을 각인함으로써 ‘자연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지요. 최근엔 첩보영화에서 수신자 확인 후 자가 폭파하는 메시지처럼 일정 시간이 지나면 종료되는 데이터나 서비스가 출시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데이터의 자연사는 여전히 갈 길이 멀고, 어쩌면 불가능하게도 보입니다. 미국에는 2011년 ‘길드’라는 취업정보회사가 생겼는데, 이 회사는 온라인상의 모든 데이터를 종합해 분석한 후 각 기업이 원하는 최적의 ‘인재’를 ‘사냥’합니다. 많은 기술 기업들이 이 회사의 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점점 더 정교해지는 빅데이터 분석은 한 사람이 해당 기업의 업무에 얼마나 최적화돼 있으며, 얼마나 근무하고 어느 정도 회사에 보상을 가져다줄 것인지를 예측할 것이며, 이제 취업 시험과 면접 같은 전통적인 채용방식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모로 데이터는 기업들에게 산소와도 같은 것입니다. 포기할 수 없지요.

스마트폰같은 하드웨어는 대략 2년마다 ‘자연사’하든 ‘안락사’되든 합니다. 이런 주기라면 사람은 평생 많으면 40~50개의 스마트폰을 소비할 것입니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통해 남긴 방대한 데이터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그러니 개인에게 잊혀질 권리를 되찾는 일이란, 디지털화된 데이터에 ‘자연사의 기능’을 탑재하는 일이 되겠군요.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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