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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의 민낯 - 승정원 일기27] 천태만상의 부정행위 판치는 과거 시험장
조선시대에는 과거(科擧)를 통해서 관직에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과거시험에 합격해야만 출세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었을까? 부정 행위가 오늘날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과거시험이 빈번히 실행되었지만 이들 시험의 최종 선발 인원이 매우 적어, 합격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고관대작(高官大爵)의 자손은 물론이고 일반 응시자들 사이에서 갖가지 기상천외한 부정행위 방법이 동원되기도 했다.

1818년(순조 18) 1월 25일, 성균관 사성 이형하(李瀅夏)가 다음 해에 있을 식년시를 앞두고 순조에게 한 통의 상소를 올려 과거의 폐단을 아뢰면서 과장에서 일어났던 부정행위를 조목조목 언급하였다.


거리낌 없이 남이 대신 글을 짓고 대신 써 주는 것, 수종(隨從)들이 너도나도 책을 가지고 과장에 들어가는 것, 과장에 아무나 함부로 들어가는 것, 시험지 제출이 순서 없이 뒤죽박죽되는 것, 바깥에서 써 가지고 들어가는 것, 시험 문제를 유출하는 것, 이졸(吏卒)들이 얼굴을 바꾸어 드나드는 것, 답안을 마음대로 바꾸고 농간을 부리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부정행위들이 생겨나 제가 다 셀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묘사된 과거시험장의 풍경이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질서가 문란하여 어이가 없을 정도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 응시하는 사람들은 평소 ‘낙(落)’ 자를 입에 올리기도 꺼릴 정도로 합격하고자 하는 염원이 강했다고 한다. 성실한 노력들을 짓밟는 과거시험의 부정행위도 어이가 없지만, 이 말도 안 되는 부정행위가 버젓이 자행될 수 있었던 허물어진 기강이 더 위험해 보인다. 


강성득(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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