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보통사람들은 저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화물을 옮기는 수단일 뿐, 일상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요. 오히려 녹이 슨 채 부두에 놓여 있는 저를 보고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을 겁니다. 그리고 공사장 등에서 임시거처로 사용되는 저를 보고 애잔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거구요.
하지만 이제 저는 거듭나고 있습니다. 제 속에 무엇을 담는지에(contain) 따라 쇼핑몰로, 공용주거시설로, 그리고 문화공간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으니까요. 한번 보실래요.
코오롱FnC가 운영하는 건대입구 커먼그라운드가 오픈 100일 기념으로 구름다리인 커먼브릿지를 연결한 모습. |
▶활기 넘치는 공간…‘힙스터(Hipster)’들의 놀이터=코오롱FnC가 지난 4월 건대입구역 인근에 오픈한 ‘커먼그라운드’는 파란색 외관에 볼팅(Bolting) 형식으로 컨테이너 200개를 이어붙인 건축물이다. 얼마든지 새로운 형태로 탈바꿈하거나 장소를 옮겨 다시 세우는 것이 가능하다. 쇼핑몰과 문화공간을 접목한 이 컨테이너 건축물은 오픈 100일만에 방문 고객 수 100만명을 돌파하며 서울의 핫플레이스로 자리잡고 있다.
이색적인 F&B(식ㆍ음료)와 함께 개성 넘치는 비제도권ㆍ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들이 시너지를 내면서 오픈 4개월만에 매출 100억원을 넘어섰다. 이러한 추세라면 3년치 매출 목표인 300억원 달성도 무난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코오롱FnC 커먼그라운드 내부 전경. |
커먼그라운드가 인기를 끌자 비슷한 형태의 가게들도 들어서고 있다. 홍대역 근처에는 푸른색 외관에 컨테이너 구조물로 인테리어를 꾸민 스트리트숍이 ‘플레이그라운드’라는 간판을 달고 영업중이다.
강남 한복판에 있는 ‘플래툰 쿤스트 할레’ 역시 28개의 창고형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었다. 독일 아트커뮤니케이션 그룹 ‘플래툰’ 소유로, 베를린에 이어 2009년 세계에서 두번째로 서울에 들어섰다. 서브컬처 창작 플랫폼을 지향하는 이 공간에서는 전시, 공연, 멀티미디어 퍼포먼스, 영화상영, 워크숍 등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가 펼쳐진다.
커먼그라운드가 광복절 이벤트로 마련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후원 브랜드 ‘희움’의 팝업스토어 모습. |
플래툰쿤스트할레 공간의 최대 장점은 무한 변신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장안의 ‘힙’한 브랜드들은 런칭 행사로 이곳을 찾는다. 패션 브랜드 행사 때에는 한 편에서 디제잉이, 한 편에서 런웨이가 펼쳐지는가 하면, 스포츠 브랜드 행사 때에는 메인 무대에 풋살경기장이 차려져 ‘힙스터’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논현동 쿤스트 할레 전경. |
▶낮은 곳을 향하는 아름다운 공간=지난 20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서울숲 진입로 부근이 인파로 들썩였다. 이 곳 1200여평 부지에 들어서는 취약층 자립공간 ‘언더 스탠드 애비뉴(Under Stand Avenue)’ 착공식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건축재료. 100여개의 컨테이너가 주재료다. 일반건축보다 공정이 빨라 오는 10월이면 완공된다. 지상 3층 규모로, 청소년, 이주여성, 감정노동자 등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한 자립공간과 문화예술공간이 들어선다. 성동구와 롯데면세점,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ARCON)가 손잡고, 컨테이너를 활용한 매력적인 창조공간을 세우게 됐다.
언더 스탠드 애비뉴 조감도. |
영등포 쪽방촌 프로젝트도 참신하다. 영등포역 부근 고가도로 밑 형형색색의 컨테이너가 이색적이다. 지난 2012년 말 서울시가 영등포 쪽방촌 리모델링을 하면서 이 기간 중 쪽방 거주자들이 머물 장소로 만든 임시거주시설이다. 비용과 시간 제한을 한방에 해결한 묘수였다. 서울시 공공건축가 위진복씨가 개조와 내부설계 등에 공을 들였다. 한진해운은 컨테이너 20개를 후원했다. 안(실효성)과 밖(디자인)의 뛰어남을 인정 받아 2013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을 받았다.
영등포 쪽방촌 컨테이너 전경. |
▶내 스펙은=어떤가요, 이 정도면 출세했죠? 저를 이렇게 여러 곳에 활용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제 몸값은 일반 건축물에 비하면 엄청 쌉니다. 크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개당 800만~1000만원선입니다. 내부설계에 따라 방을 두세개 정도 만들 수 있고, 외장도 알록달록하게 칠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개조와 도색을 더하면 몸값은 당연히 더 올라갑니다.
예전에는 제가 적재물 또는 방문객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종종 쓰러지는(무너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많이 튼튼해졌죠. 그렇더라도 층층이 높게 쌓아 올리지는 못합니다. 높아야 2, 3층이죠. 그래서 저를 쓰는 곳은 옆으로 긴 형태가 대부분입니다. 땅값이 비싼 도심에서는 아무래도 공간 효율성이 떨어지죠. 그래도 건축비용과 시간 측면에서 가성비가 좋은데다 눈길을 사로잡는 색다른 콘셉트여서 이렇게 다시 주목 받고 있답니다.
amig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