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1867)’을 서울시립미술관 로비에서 읽는다면? “종북”, “좌빨” 비난이 쏟아졌을 것이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자본론을 읽는 ‘렉처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각국의 관람객들은 행위의 의미를 찾기 위해 경청했다.
세계 미술계 트렌드를 짚어주는 베니스비엔날레가 올해 화두로 제시한 건 미술의 정치사회적 발언이었다. 미술가들은 다소 거칠지만 직접적인 방식으로 동시대와 호흡하는 미술의 역할을 거론했다. ‘은사자상’을 수상한 임흥순 씨의 작품 ‘위로공단’ 역시 직설화법으로 자본주의를 고발했다.
주초부터 미술계가 시끄럽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예술가 길드 아트페어’에 홍성담 화백의 그림 ‘김기종의 칼질’이 나와서다. 김기종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이다. 비난이 쏟아졌다. “테러범을 옹호했다”는 이유다.
홍성담이 누군가.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출산 그림’으로,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에선 ‘세월오월’ 걸개그림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민중미술가다. 사건이 커진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미술품 매매가 법적으로 금지된 미술관에서 전시회도, 아트페어도 아닌, 애매모호한 ‘화제성’ 이벤트를 벌였다는 것과, 이 이벤트에 홍성담이 있었다는 것이다.
전자에 대한 평가는 유보하더라도, 후자에 대해서는 씁쓸하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이념의 잣대가 공고해 표현의 자유가 발 붙일 곳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김기종의 칼질’을 다시 봤다. 어디에도 김기종의 테러를 옹호했다거나, 그를 ‘의사(義士)’화 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저 정치사회 구조의 부조리와 모순에서 비롯된 절망감을 희화화했다는 정도였다. 심미적으로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지나치게 설명적이어서 좋은 미술작품을 대했을 때의 감동도 없었다. 관람객들이 판단하고 외면하면 그 뿐이다.
다만 이런 문제작들을 계속 내놓는 작가의 의도에는 귀기울여 보자. “이런 사건이 또 일어나지 않기 위해 우리 사회의 민낯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작가의 말 말이다. 사견 하나 더. 만약 그림에 ‘김기종은 나쁜 놈’이라고 써 넣었어도 이렇게까지 비난이 쏟아졌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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