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을 맞는 올해 필자가 속해 있는 광화문 문화포럼 회원 17명과 함께 한국이 낳은 아시아 항일 운동의 선구자 안중근 의사의 흔적을 찾아 지난달말 하얼빈과 여순을 찾았다.
첫날 도착한 도시 하얼빈은 원래 송화강 유역의 조용한 어촌이었으나 1898년 러시아가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장하는 동청철도를 건설하면서 유럽식으로 탈바꿈한 도시다. 이후 러시아를 비롯한 강국들의 세력다툼의 장으로, 격동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이기도 하다. 이번 탐방에 함께 한 김환수 선생은 1932년 하얼빈에서 태어나 해방되던 해 귀국한 이후, 70년 만에 이곳 땅을 다시 밟아본다며 감개무량해하기도 했다.
이곳 하얼빈역에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항일 의거 투쟁의 흔적을 담은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다. 이 기념관은 2013년 한ㆍ중 정상회담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장소에 기념 표지석을 설치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전한 것에서 출발했다. 시진핑 주석은 기념 표지석이 아닌 기념관 설립을 추진했고, 작년에 완성돼 지어진지 1년 만에 방문객이 12만명을 넘어섰을 정도로 외국 관광객은 물론 중국인들의 발길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기념관에 들어서면서 가장 처음 필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구를 겨눴던 결단의 시간인 9시30분에 숨이 멈춰있는 시계였다. 시간이 멈춘 그 곳에서 안중근 의사가 총탄을 발사한 곳의 흔적을 바라보니 절로 그날의 역사적 순간이 떠오르고, 그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길 수 있었다.
둘째날에는 항일전쟁의 전사들을 기리는 ‘동북열사기념관’과 인체 실험으로 악명 높은 731부대의 잔혹성을 고발하는 ‘731부대죄증진열관’을 둘러보고, 셋째날에는 안중근 의사가 144일 동안 수감생활을 하고 순국한 여순감옥을 방문했다.
여순감옥이 위치해 있는 대련시는 필자의 안사람 고향이기도 하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필자와 중국 대련에서 태어난 안사람이 한국에서 만나 가정을 꾸리고 이제껏 함께 해왔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으며 고속철에 몸을 실었다. 여순감옥에 도착해 그 안에 마련돼 있는 안중근 의사 추모실 그의 흉상 앞에 헌화를 하고 묵념을 했다. 이어 함께 온 일행 중 국내 유일의 팝페라 부부로 일본인 어머니를 둔 소프라노 구미꼬 김과 테너 주세페 김의 헌정 공연이 진행됐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인 조 마리아 여사가 감옥에 있는 안중근 의사에게 보낸 편지를 노래로 만든 ‘아들아 아들아’를 부르는데, 마음이 측은해지며 필자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번 탐방에는 가는 곳마다 중국과 일본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이를 보면서 우리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의 현장답사가 꼭 필요한 곳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역사적 순간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이러한 현장체험은 교과서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교육의 장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뿐 만 아니라 일본의 젊은이들도 보다 더 많이 방문해 올바른 역사 인식과 제고의 시간을 가져보기를 바란다.
역사는 기억되고 남는다. 위대한 선조들이 만든 역사적 순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두가 기억할 수 있는 역사를 만드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