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상과학 소설가 윌리엄 깁슨(67)의 말을 빌어 왔다. 그는 1993년 한 인터뷰에서 “미래는 이미 여기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The future is already here. It’s just unevenly distributed.)이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변화는 빠르고, 대다수와 달리 누군가는 이에 맞춰 앞서 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미 온 미래’로 인터넷이 있다. 국가, 기업, 개인에까지 촘촘히 퍼져 세상을 바꾸고, 이끌고 있다. ‘IoT(Internet of Things, 사물인터넷)’라는 용어는 인터넷으로 모든 것이 연결되는 세상을 상징한다.(*‘사물인터넷’으로 번역돼 통용되고 있지만, 의미상 ‘만물인터넷’이 더 적합한 번역이다.)
디자인도 ‘이미 와 있는 미래’다. 널리 퍼져 세상을 바꾸고 있다. ‘DoT(Design of Things, 만물디자인)’라는 용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말그대로 모든 영역에 디자인이 적용되는 ‘DoT 세상’이다. 디자인은 모든 것과 융합해 시너지를 내고, 새 것을 창조한다. 제품, IT/미디어, 건축, 패션, 푸드, 그리고 공공서비스 영역까지 아우른다. 기본플랫폼처럼 디자인이 기능한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개관(2014.3월) 1년 반 만에 명소로 떠올랐다.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파격적 디자인은 초기 비난을 딛고 갈수록 빛을 발했다. 지금은 대관을 위해 줄을 서야 할 정도다. 유수의 명품회사들도 예외가 없다. 뉴욕타임스(NYT)는 올초에 2015년에 꼭 가봐야 할 세계 명소의 하나로 DDP를 꼽았다.
‘I ♥ New York’ 로고는 뉴욕주가 선택한 ‘신의 한수’였다. 1975년 당시 뉴욕주의 관광수입은 10년 가까이 제자리였다. 그래픽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Milton Glaser)에게 관광 유치 캠페인에 쓸 로고를 의뢰했다. 이렇게 해서 빨간색 하트가 포인트인 ‘I ♥ New York’이라는 걸작이 탄생했다. 관광수입이 급증하고, 뉴욕의 선호도가 올라가는 등 새 로고를 활용한 캠페인은 대박을 쳤다. 또 이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컵 등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단숨에 뉴욕의 상징이 됐다.
기아자동차는 디자인 혁신의 모범사례다. 기아차는 미국에서 싸구려 차의 전형이었다. 실제로 싼 가격으로 저소득층을 공략했다. 성과는 부진했다. 정의선 부회장은 디자인에 승부를 걸기로 했다. 아우디를 디자인한 피터 슈라이어 (Peter Schreyer)를 2006년 영입했다. 기아차는 환골탈태했다. 선호도도 급상승했다. 지난해에는 연간판매량에서 역대 최고기록을 세웠다. 형 현대차를 앞설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디자인의 위력이다.
오는 11월10일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열리는 헤럴드디자인포럼2015는 ‘DoT 세상’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디자인플랫폼, 창조와 융합으로 가치를 더하다’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포럼에는 마르티 귀세와 함께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의 누나이자 페이스북 마케팅 총괄을 지낸 랜디 저커버그(Randi Zuckerberg), 세계적 산업디자이너 아릭 레비(Arik Levy)와 톰 딕슨(Tom Dixon), 건축가 반 시게루(Shigeru Ban), 픽사 공동창업자 앨비 레이 스미스(Alvy Ray Smith) 등 쟁쟁한 연사들이 무대에 오른다.
김필수 기자/pilsoo@heraldcorp.com